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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22. 2022

깍두기를 담그며

 “선생님 다 풀었어요.”

 “벌써?”

 아마도 두세 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우리 아이가 혹시 천재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을 법한 재훈이가 벌써 수학 문제를 다 풀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20문제 중 10번쯤 풀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재훈이를 위하여 나는 항상 여분의 문제지나 재훈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따로 준비해 두었다.        

 

 “선생님 다 그렸어요.”

 “벌써?”

 무슨 일이든지 대충대충 하는 영민이가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다 그렸다고 큰소리를 쳤다. 영민이는 미술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어디 보자. 영민아, 색깔을 좀 더 꼼꼼하게 칠해야 될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민이가 또 다 그렸다고 소리친다. 

 “영민아, 이곳이 너무 텅 비어 있잖아. 나무나 새, 나비를 그리면 더 멋질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이 그림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영민이는 무려 서 너 번이나 그림을 완성한다. 나는 영민이를 위하여 영민이가 좋아하는 공룡이 나오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책장 안에 준비해 두었다.       


 “선생님 그만할래요.”

 소민이는 달리기를 하든 놀이를 하든 움직이는 활동을 싫어한다. 앉아서 쪽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꼼지락거리며 종이 접기 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체육 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역시 소민이가 그만하겠다고 떼를 쓴다. 보는 것도 공부니까 옆에서 지켜보라고 한다. 소민이는 국어와 수학 시간에는 도움반에 가서 공부를 한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소민이를 위하여 비눗방울 놀이 방법을 알려 주었다. 컵에 물과 퐁퐁을 조금 넣고  빨대로 저어 잘 섞은 다음 빨대에  퐁퐁을 찍어 공중에 ‘후’ 불면 비누 방울들이 줄줄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소민이 주위에는 친구들 한 두 명은 꼭 같이 어울린다. 소민이 사물함에는 내가 준 한 묶음의 빨대가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빨대를 나누어 주는 사람은 소민이다.      


 영민이나 소민이 처럼 학급 학생 개개인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라 개별학습이 필요한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학급의 학생수가 많고 제한된 시간 때문에 수준별 수업이 이루어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곰탕이나 갈비탕 집에 가면 모서리가 3.5㎝ 정도 크기의 깍두기가 나오는데 아이들에게는 너무 커서 먹기가 곤란하니까 엄마들은 가위로 자라줄 수밖에 없다. 잘라먹든 두 개를 한꺼번에 먹든 식당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고객에 대한 수준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반드시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깍두기를 담다가 문득 수준별 수업과 깍두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깍두기의 크기를 다르게 하면 어떨까?'

 도마 위에 무를 올려놓고 썰기 시작한다. 1㎝, 1.5㎝, 2㎝, 2.5, 3㎝, 3.5㎝ 크기로 썰기 시작한다. 4㎝ 정도의 크기도 대 여섯 개 정도 썰어 놓는다. 다양한 크기의 무 조각들은 보기에도 조화롭고 재미있다. 깍두기가 빨갛게 익으면 각자 자기가 필요한 크기의 깍두기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겠지.      


 수준별 수업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학생 개개인에 맞는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는 셀 수 있지만 사과 씨앗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 하나하나는 사과 같은 존재다.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률적인 잣대로 학생들은 판단한다는 것은 엄청난 착오다. 맞음과 틀림, 못남과 잘남, 느림과 빠름 등의 차별이라는 이중적인 잣대는 더욱 위험하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교육환경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제도적으로 어려운 당면 과제들도 많다. 하지만 이 땅의 교사들은 개개인의 학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이 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있다. 


 교사는 도우미이며 지킴이다. 내가 지켜야 하고 내가 도와야 하는 소중한 아이들이 늘 옆에 있다. 오늘도 네다섯 가지 크기의 깍두기를 담그며 다양한 색깔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맡은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나의 깍두기를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더욱 다채롭고 새로운 수업 방법이 없나 찾아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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