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연 산문 13
저는 짧은 글보다는 긴 글이 좋아요. 내 마음의 당위를 증명하기 위해 구구절절 지진부진하게 쓸 수 있는 글이라서요. 근데 사람들은 긴 글을 싫어해요. 글은 읽혀야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데 제가 이 글을 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아 제 쓰임을 다 할 수 없어 글이 슬플 거 같네요. 내가 내 글의 저자이자 독자이지만 이런 건 그냥 자아 커뮤니케이션에 지나지 않아요. 송수신자가 모호한 그런 거요.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잘 읽지 않아요. 첫 문장에서 끌리지 않으면 그다음 글을 읽는 게 제게는 고된 일이거든요. 이것 또한 글에게 잔인한 일이 되겠죠? 글이라는 것은 첫 문장이 다가 아닌데, 사람을 보고 첫인상에 판단해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첫 문장을 매력적으로 쓰고 싶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네요. 적용하는 사례도 드물고요. 어쩔 때는 죽어라고 글을 쓰고 싶어도 써지지 않는 날이 있는데 어떤 날에는 쏟아지듯 써지는 날도 있어요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 글이에요.
방금 전 퇴고하지 않은 글을 발행했어요. 사실 발행하고 난 뒤 적시적소에 맞지 않은 조사를 발견해서 고쳤어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재발행을 눌렀죠. 결국 저는 그 자체일 수 없던 거예요. 아주 지질한 행위를 했지만 그래도 내 글을 보고 누군가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되는 사람이 글을 쓴다고?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저 혼자 멋쩍은 사람으로 남는 게 나을 것 같아 고치고 또 다른 글을 씁니다.
저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냥 근시와 난시를 가진 사람이 되었어요. 아주 심한 근시와 난시요. 안경을 벗으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요.
한창 많이 끼던 렌즈로 눈이 고통받을 때 렌즈 없이 길을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이 있는데요 정말 아무것도 안 보여서 버스도 못 탔고 길도 못 걸어 다녔어요. 그래서 버스가 오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안경을 꺼내서 번호를 확인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안경으로 인해 작아진 제 눈을 바닥으로 깔고 다녔죠.
지금 말하는 이야기는 어떤 말의 은유적 표현을 위해 쓴 글의 아니라 그냥 그랬답니다 하는 글이에요. 모든 행위에서 깨달음을 얻을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글을 쓸 때 항상 소리 내어 읽어봐요. 한 번에 스르륵 읽히는지 어디 구덩이가 파여 있지는 않는지 걸려 넘어질 턱은 없는지와 같은 걸 검열해요. 그러고 나서 기승전결의 구조가 어림잡아 있다 싶으면 글을 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사여구가 빠지는데, 그것만 줄여도 글의 반은 줄어듭니다. 근데 저는 그 모든 걸 표현하고 싶지만 읽히지 않은 글이 될까 그 아이들은 배제해 두곤 합니다.
짧은 글을 사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저는 감히 실험적으로 긴 글을 올려봐요 다 읽을까? 과연 이 글을 좋아할까? 하고요.
이번 글이 그래요 과연 누가 이 글을 끝까지 읽을까요?
나 말고 이 글의 진짜 독자가 있을까요?
여담으로 말하자면 제 산문시리즈에는 3편이 없어요. 썼지만 누군가 읽지 않았으면 하는 글이라서 비워뒀습니다. 이 또한 별 의미 없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