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끝내지 않고 중간에 그만두는 것
매몰비용 [Sunk Cost]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용
의사결정과 실행 이후에 발생하는 비용 중 회수할 수 없는 비용
일단 시작하면 끝이 보이는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나에게 매우 어려웠다. 이미 쏟아버린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고 느껴져서인지 아니면 그것을 끝냈다는 자기만족을 얻고 싶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던 것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했다.
이런 성향은 게임과 영화, 책을 즐기는데도 나타났다. 한창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게임을 열심히 할 때는 즐기며 게임을 한다기보다 숙제하듯 억지로 한적도 있었다. 명작이라고 꼽히는 게임을 내가 안 해봤다 라는 것이 싫었다. 비록 그 게임이 나와 맞지 않아 졸면서 하고 있을 지라도 꾸역꾸역 끝까지 진행했다.
썩 좋은 성향은 아닌 것 같다. 완료에 대한 집착이 취미를 즐기는데 독이 된다. 그 시간을 즐긴다기보다는 1%씩 나아가는 진도율을 보면서 '이제 드디어 곧 끝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완료하는 것 자체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이런 생각과 함께하는 취미가 정말 내가 재밌자고 하는 것이 맞나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났다.
독서 후 인상 깊은 내용과 나의 감상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포스팅된 글들 중 [책 리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글들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의 책 리뷰 업로드는 10월 10일*로 작성한 지 거의 두 달이라는 지났다. 그동안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책 두 권에 시간이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책 리뷰] 부자가 되려면 말이야... -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 리뷰 보러 가기
나는 장소와 편의에 따라 종이책과 밀리의 서재를 활용한 전자책으로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각각 ‘룬샷’이라는 종이책과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라는 전자책이다. 10월 초중순부터 읽기 시작했으나 두 권 중 어느 하나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장르를 안 가리고 다양한 책을 읽는 편인데도 이 책들은 정말이지 술술 읽히지 않았다. 심지어 룬샷은 작년에 한 번 포기한 후 독서에 재도전한 책이다.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이제야 467 페이지의 끝을 보이는데 머릿속에 남는 것은 15 페이지 프롤로그에서 말해준 핵심 메시지 하나이다.
완독을 앞둔 시점에서도 프롤로그의 메시지가 전부라는 생각이 드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긴 시간 동안 억지로 다 읽었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앞서 말했듯 끝이 보이는 것을 중간에 그만두기는 나에게 참 어렵다.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고 결국 책 두 권에 두 달이라는 시간을 묶이고 나서야 다시 한번 중간에 그만 읽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만하는 것을 “포기”라는 단어를 통해 부정적인 행위라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그만두어야 정말 중요한 나머지에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책 두 권의 완독을 일찌감치 포기했더라면 그 시간에 더 의미 있는 다른 책을 읽거나 취미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을 완성하기엔 우리의 시간과 노력이라는 자원이 너무 한정적이다. 인생에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를 하는데 완독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미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파악했거나, 양서라 할지라도 독자와 맞지 않는다면 중간에라도 덮는 편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매몰비용을 아쉬워하지 않고 그만두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과감히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그만두는 것이 더 좋았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명상에 관한 책은 그만 읽으려 한다. 완독을 포기하는 연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