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2025.03.28
광고는 나에게 애증과도 같은 존재이다.
짧은 시간 임팩트 있는 컨텐츠라는 것이 매력적이어서, 꽤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광고대행사에서 광고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기도 했고,
지금도 먼발치에서 관심을 표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커리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2000년 후반에서 2010년 초반)
광고대행사는 꽤 취업시장에서 희소하면서 인기 있는 직장 중에 하나였다.
학생들이 선망했던 ATL위주의 대형 클라이언트를 보유하고 있는 상위 20~30개 종합광고대행사 중에
공채를 진행하던 대행사는 한 손에 꼽았고, 그나마도 직군별 단자리 수로 사람을 뽑았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3D 직군 중 하나로,
가장 인기 없는 직종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갖은 어려움과 준비 끝에 나름 ATL 종합광고대행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광고업계를 떠나기까지의 시간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을 꼽으면,
"우리는 예술이 아닌, 커머셜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동료들 중 (특히 제작팀, 프로덕션 그리고 커리어 초년기의 나)
자신들이 만들어낸 자식과도 같은 광고를 커머셜이 아니라 작품으로 보는 경향이 상당 수 있었다.
크리에이터로 자존심과 기준을 갖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광고는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생각을 고양하는 역할을 자유롭고 형이상학적인
예술 작품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명확한 목표와 소비자들 사이의 고리를 이어주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냉혈 하고, 숨 막히는 컨텐츠이다.
요즘 다시 광고를 보면,
너무 재기 발랄하고 즐거운 광고들이 많다.
컨텐츠 그 자체로 즐길만한 광고도 많아지고,
광고를 일부러 찾아볼 만큼 재미있는 광고도 있다.
그런데 그 광고의 목적이 이루어졌나라고 생각해 보면,
얘기는 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브랜드가 기억나는 건 둘째 치고,
만든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브랜드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지,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고가 이뤄야 할 목적을 망각한 것 같은,
씁쓸함이 느껴진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루어야 하는지를
잘 곱씹고 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