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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콩 Oct 11. 2022

1. 2002년 10월 우리의 첫 만남

하나뿐인 내 동생 토토


 나 10살, 너 1살.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내가 10살이던 해의 10월. 작은 고모가 키우던 강아지 바비가 새끼를 낳았다. 바비는 실키테리어였다. 더 어릴 적부터 많이 보던 강아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서워해 보기만 해도 도망 다니기 바빴다. 사촌 언니가 키우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그 강아지와 찍은 사진에는 어른 뒤에 숨거나 울고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정도로 강아지를 무서워하던 나에게 바비는 강아지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준 아이였다. 그런 바비가 낳은 강아지라니. 할머니 댁에 가서 본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내 손바닥만 한 강아지들은 바닥을 꼬물꼬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작으니 무섭지 않았던 걸까. 난 강아지들 사이에 앉았고, 까만색 강아지들은 눈도 못 뜬 채로 방바닥을 기어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내 치마를 질겅질겅 씹었다. 서로 물겠다고 난리였다. 그 모습에서 난 홀딱 반해버렸다.


 무조건 강아지를 데리고 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집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가야 한다. 그때는 동생이 생긴다는 것보단 그냥 강아지가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어린 마음에 나와 내 쌍둥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 네 식구는 모여서 가족회의 아닌 회의를 시작했다.

 엄마는 반대. 산책이며 밥 주는 것까지 다 집에 있는 엄마가 해야 하니 안 된다고 무조건 반대부터 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키우고 싶었고, 우리가 잘하겠다는 말로 엄마를 설득했다. 지켜질지도 모를 말을 일단 내뱉고 본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엄마를 설득하고 나니 아빠의 대답은 찬성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3대 1. 과반수 이상으로 바비의 강아지 중 한 마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기로 했다.


 고모에게 먼저 사실을 알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한 달은 바비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한 달이란 시간을 기다렸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한 달이 그때는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가을에서 겨울에 접어들 즈음, 토토는 우리 집에 왔다. 제일 먼저 태어났고, 코가 길어 잘생겼다는 친할머니의 추천으로 온 강아지의 이름은 토토였다.


토토. 실키테리어 토토.


 아쉽게도 토토란 이름은 강아지가 오길 기다렸던 우리가 짓지는 못했다.

 우리가 학교에 가고 아빠가 일을 나간 사이에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고모의 전화를 받은 엄마가 갑자기 생각나서 지은 이름이었다.

 까만색 털이 매력적이었던 강아지 토토.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었다. 별다른 뜻은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토토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토토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그냥 토토였다.


 토토가 집에 온 이후로 우리 집엔 웃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도 가족끼리 모이면 질리지도 않는지 이야기하는 일화 몇 개가 있다.


 몇 가지 일화를 꺼내자면, 집에 왔을 당시 너무 작아서 토토 목에 방울이 달린 목걸이를 걸어놓았는데 애가 툭하면 사라졌다. 작은 몸으로 집을 얼마나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지. 토토가 없어지면 우리는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녔다.

 하루는 안방에서 방울 소리가 울리는데 아무리 찾아도 토토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다른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닌지 다른 곳도 다 찾아봤지만, 토토는 없었다.

 한참을 헤매던 우리가 토토를 찾은 건 침대 밑, 좁은 틈 사이에서였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얼마나 잘 숨는지. 깊게도 들어가서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유혹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토토야”

“왜 거기 있어. 빨리 나와.”


 애타게 불러도 봤지만, 토토는 마지막 수단으로 꺼내 든 간식에 넘어와 침대 밑에서 벗어났다.


 또, 이 말썽꾸러기 토토는 조금 컸을 때 엄마가 입는 겨울 외투 소매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들어갈 땐 잘 들어갔는데 나오지를 못해서 낑낑거리던 토토 때문에 가족들은 옷을 잘라야 하나 애를 어떻게 빼야 하나 전전긍긍했다. 고민한 게 무색할 만큼 언제 낑낑거렸냐는 듯이 토토는 조금 도와주자 곧바로 나와 가족들을 웃게 했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강아지를 잘 몰라 발톱 정리를 잘 못 해준 탓에 며느리발톱이 아예 빠진 적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우리 자매는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상처가 덧나지 않게 붕대로 칭칭 감아놨었다.

 붕대를 감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토토는 우습게도 붕대를 감아주자마자 아픈 애처럼 한쪽 발을 든 채 껑충껑충 뛰며 간식을 얻어먹었다. 그때는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날이 밝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쪽 발을 든 채로도 잘 돌아다니는 토토 때문에 붕대는 금방 풀렸다. 방금 아프다며 끙끙거리고 절뚝거리던 애가 맞는 건지. 그때는 또 아무렇지 않게 집을 돌아다녀 우리는 한동안 엄살쟁이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딸 둘밖에 없는 집의 막내아들 토토.


 강아지를 가장 반대했던 엄마는 어느새 토토를 가장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토토는 우리 집에서 강아지 그 이상으로 가족이 되었다.


 사고뭉치였지만, 그래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가족들은 토토를 많이 사랑했고, 또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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