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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Aug 08. 2015

제주 여행, 마음 빗장을 풀고

세 번째 이야기

8시간 강제 수면(?)에서 깨어나 창 밖을 봤다. 여전히 해는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난리법석을 한 껏 부렸던 제주 날씨가 오늘 여행까지 훼방을 놓을까 싶어 염탐하러 밖을 나섰다. 밖은 초저녁 분위기를 두른 이른 아침이었다. 지미봉이 눈에 바로 띠었다. 거대한 구름이 지미봉 머리에  걸터앉아 한동안 떠날 줄 모른다. 자세히 보니 산안개다. 거세게 밀려오는 바람은 없었지만 반팔 소매 사이로 파고도는 추위에 어깨를 움츠렸다. 양 손을 교차해 몸을 비비면서 게스트하우스로 몸을 돌렸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 사이에 존재하는 '지금 여기라는 현실'은 쉽게 지각할 수 없는 것 같다. 과거가 된 기억은 내적 사실이 되어 곧장 미래를 예측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미래의 기대(예측)가 우리가 예상한 범위 밖으로 뚫고 나가버릴 때, 우리는 또 다른 '새로움'과 조우한다. 그 새로움이 기쁨이 될지 슬픔이 될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기쁨 또는 슬픔을 느끼는 그 순간은 바로 '현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지각'을 통해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알게 된다. 어제 경험한 날씨(과거의 기억)때문에 나는 오늘 제주 여행을 포기해야 할 것(미래의 예측)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울적한 그러데이션 회색 구름 사이로 해가 뜨자(예상치 못한 새로움) 나는 그 순간(현재)을 들떠하고 기뻐했다. 그 새로움을 만끽하고자 예상에 없었던 우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재빨리 해치우고 올레 1코스 종달리 해변가로 향했다.


우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종달리 해안도로(올레 1코스)를 따라 성산항으로 향한다. 바람이 밀어내는 파도와 파도를 타고 밀려온 짠내를 만끽하며 걸었다.

변덕스럽다 못해 당황스럽고, 익숙한 듯 낯설게 하는 제주 날씨. 해는 다시 흐린 구름들 위로 더 높게 올라간  듯했다. 회색 구름들 사이로 반가웠던 햇살의 조각들은 체념해야 했다. 우도에 입도했지만 아쉽게도 우도에서 찍은 사진은 이 한 장뿐이다. 사진이야 셔터를 누르면 그만이라 하겠지만, 그저 찍기가 싫었다. 사진을 찍는 대신 우도 자유여행을 하기 위해서 3륜 오토바이를 대여했다. 최고속도 30km의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우도에서 30km는 충분히 스릴감을 맛보게 한다. 우도의 1차선 편도에서 자전거, 스쿠터, ATV, 3륜 차, 자동차, 버스가 1차선 도로에서 같이 달린다. 장롱면허인 내게 우도에서 오토바이 운전은 서울 도심에서의 운전만큼 살 떨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우도에서는 대여 주에 발생한 사고의 모든 책임은 본인 책임이라는 동의서를 쓴다. 아무튼 2시간 남짓 3륜 차를 끌며 우도를 누볐다. 아쉽지만 우도의 사진은 이 사진으로 대신한다.(사실 여기가 어디서 찍은지 기억도 안 난다)


우도에서 나와 성산항에서 701번 버스를 타고 수 분을 달려 시흥리에 있는 도로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은 동화감성 흠뻑 나는 게스트하우스. 시흥리 주변에 여기 만큼 깔끔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게스트하우스 너머로 시흥초등학교를 가는 방향에  '클로버'라는 펜션이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말미오름을 다시 오를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묵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말미오름에 가보니 구제역으로 인한 입을 금지시킨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그냥 오기 섭섭한 마음에 찍었다.


오후의 뜨거운 햇빛을 막느라 힘겨웠을 하얀 천의 장막들이 늦은 밤바람의 용기를 얻어 힘차게 춤을 췄다. 나부끼는 장막 너머로 '클로버' 카페의 붉니란 불빛이 점처럼 빛나고 있었다. 오늘은 기필코 다른 게스트들과 시끌벅적한 이야기로 제주의 마지막 밤을 나누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모두들 저마다 자기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했다. 홀로 카페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쌀쌀한 듯 어쩌면 무심하기까지 한  호스트뿐이었다. 어쩌면 제주에서 마음의 빗장을 여는 건 나 뿐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그저 조용한 적막 속에 나를 상기시켜주는 건 어둠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701번  버스뿐이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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