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전문직이다(13)
남편을 사랑한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모든 아내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아온 세월만큼 정이 쌓이거나 애들 아빠이거나, 그도 아니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아내들도 있다.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 전문용어로 '밑밥을 깔기 위해' 서 인데,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7년 2월 말, 나와 결혼했다. 당시 그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들인 초년생이었다. 나는 이미 직장생활 N연차로, 사횟밥 햇수로 하면 그보다 한참 선배인 셈이었다.
그가 받은 첫 월급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무 감격스러워 사진을 찍어둔 것 같은데 파일은 온데 없지만 세금 제외하고 160만 원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내 월급의 절반이 못 되는 액수였지만 첫 월급을 받아온 남편이 아들처럼 대견했고 고마왔다. 내가 번 돈을 그렇게 아껴 썼다면 이미 부자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당시 남편이 번 돈으로는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게 아까웠다. 그야말로 환자들의 오줌, 피, 똥 묻혀가며, 제대로 된 잠과 식사를 반납해 번 돈 아닌가. 그렇게 남편은 인턴 1년, 전공의 4년 끝에 전문의가 되었고, 이후로도 전임의로 2년 반을 더 수련한 뒤 드디어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나와 결혼할 당시의 풋내기가 아니다. 남편은 이제 하루 오십 명이 웃도는 환자를 보는 난임전문의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반쯤 집을 나선다. 당일 진료할 환자에 대해 미리 숙지하기 위해서인데 환자들의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남편은 성실하고, 실력 있는 의사로 많은 환자들의 신임을 받는다. 자랑스럽다.
그러나 한편, 그의 성공과 현재 나의 모습이 겹쳐지며 공허함을 느낀다.
나는 2020년, 셋째를 낳으며 하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아이가 돌이 될 무렵까지 일과 관계된 사람들의 메일이나 전화가 간간이 이어졌지만 (육아 때문에) 거절하는 횟수가 늘자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필드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지 만으로 오 년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한창 일하던 시절의 사진을 찾아보며 추억에 젖는다. 마치 한 물 간 옛 가수나 배우가 유튜브에 나와, 내가 왕년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에 열 올리는 것처럼 나 역시 가끔 SNS에 몇 년 전 피드들을 리포스트 하며 '그래도 한 때 괜찮았던' 과거를 어필한다.
남편이 성공(?) 하니 좋지 않느냐고, 잘 나가는 남편을 두어 좋겠다고 하는 이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보어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이 번 돈으로 살림을 하고 가끔 내 물건을 사기도 하는 것에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남편의 지금에는 내 공도 있다고 생색을 내야 할까.
아니 애초에, 남편과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인데 남편의 성취에 내가대신 축하받는게 우습지않나.
가끔 상상한다. 만일 셋째를 낳지 않았다면,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루를 쪼개어 쓰고 동으로 서로 날아다니던 그때처럼 커리어를 차곡히 쌓으며 잘 나가고 있을까? 돈도 잘 벌겠지. 그러면 지금보다 더 여유로울까. 당당할까. 저녁메뉴를 고민하고 지저분한 아이들 방에 한숨 쉬지 않아도 되었을까.
남편의 성공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나, 이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