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전문직이다(1)
16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경단녀가 되었다. 애가 둘일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셋부터는 무리였다. 잠시 쉰다는 게 어쩌다 보니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정신과 약도 먹고, 부부싸움도 실컷 하고 애먼 아이들에게 화풀이도 하기를 2년 여.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막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노산과 육아로 넝마가 된 몸도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이제야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덕분이다. 이제는 안다. 내 이름 앞에는 더이상 무엇도 붙지 않는다는 것을. 소속도 월급도 없는 백수라는 사실을.
워킹맘으로 산 시절에도, 직업이 없는 여자(전업주부)들이 편해 보이거나 부러운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안타까운 편이었다. 남부럽지 않게 배우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데 아무나 해도 되는(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깟' 집안일과 육아에 매진하는 게 낭비로 여겨졌다.
전업주부로 산 지 어느덧 만 4년. 마흔둘에 낳은 늦둥이는 올해부터 유치원에 간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는 초등 맨 윗학년. 해보니 알겠다. 주부(엄마)도 전문직이라는 사실을.
살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차이가 많이 난다. 살림의 영역이란 비단 청소, 빨래, 설거지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경제적으로 장을 보고 낭비 없이 냉장고를 비우는 일부터 가족 구성원들의 일과를 충실히 뒷받침하는 그 모든 행위를 말한다.
육아의 능력차는 더 심하다. 많이 낳아 키웠다 해서 잘하는 게 아니며 나이, 학력의 높고 낮음과도 무관하다. 육아의 기술은 적성, 타고난 성품이 상당 부분 작용하는 듯하다. 이과생이 의사가 되고 문과생이 작가가 되듯, 육아를 잘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질이 중요하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지만 결코 육아에 있어 실력자라 말할 수 없다. 급하고 욱하는 성미는 육아에 있어 쥐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아 키우다 보니 더 힘에 부치는 것같다.
그렇다고 전문직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타고나지 않았다고 못할 건 없으니까. 시간과 노력이 남들보다 많이 들뿐. 책과 유튜브, 명상 등을 통해 실력을 배양코자 노력 중이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기 위해 전문직 엄마가 되려 한다. 해야 되니까 하는 그런 거 말고, 잘하고 싶다. 하다 보니 보람과 기쁨이 있다. 정성껏 지은 밥이 아이들 입으로 맛나게 들어가는 모습, 잘 정리된 집에서 편히 쉬는 남편을 볼 때 그렇다. 영양소에 맞게 식단을 짜고, 계절에 맞게 침구를 바꾸고, 아이들을 위한 책을 고르는 그 모든 행위들이 이제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가벼운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면허는 없지만 엄마도, 전문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