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전문직이다(3)
"어서 일어나 아침 먹어라."
"한 숟갈이라도 뜨고 가"
"이거라도 마시고 가!"
매일 아침, 현관까지 따라나와 엄마가 내미는 컵에는 생식이며 과일 간 것이며 각종 이름 모를 요상한 색의 것들이 담겨 있곤 했다. 잠깐 그대로 서서 후딱 마시고 넘기면 될 것을, 뭐가 그리 귀찮고 바빴는지 "늦었어! 안 먹어도 돼" 라며 젖은 머리로 뛰어 나가곤 했던 학창 시절. 등뒤로 엄마가 내쉬었을 한숨과 아쉬움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정확히 30년이라는 세월뒤에 업보로 되돌아올 줄이야.
"안 먹어! 배 안 고프다니까!"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는 매일 아침 일곱 시 반 셔틀버스를 탄다. 거리로는 7Km쯤, 차로 이십여분 쯤 걸리는 학교는 지역의 유일한 여자고등학교인데, 여학생들만 모여있으니 적당히 꾸미고 가면 될 법도 한데 아직 학기 초라 그런가, 아침부터 단장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말리고, 톤업크림을 찍어 바르고... 그나마 교복을 입어 다행이지, 사복이라도 입었다간 제시간에 나가지 못했을 게 뻔하다.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눈치껏 잘하는 둘째도 아침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한참 잠이 쏟아질 나이이니 이해는 하지만 몇 번씩 부르고 궁둥이를 두드려야 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침대 아래로 발을 딛는다.
"오늘 아침은 뭐야?"
입도 제일 짧은 주제에 세 끼는 곧 죽이도 챙기는 둘째는 눈 뜨자마자 아침부터 묻는다. 그래도 새벽부터 정성껏 차린 밥상을 본체만체 나가는 것보다야 고맙다. 눈곱만 떼고 식탁에 앉아 부은 얼굴로 식탁을 보며 환하게 웃음을 짓는데, 새벽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듯하다.
이번엔 막내 차례.
그저 늦잠 좀 잤으면, 싶은 오십 개월 이 놈은 (쓸데없이)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부터 혼자 바쁘더니 밥때가 되니 또 말이 많다.
"나는 소시지랑 밥 먹고 싶은데. 생선 없으면 싫은데. 이거(계란프라이) 말고 소금 찍어 먹는 동그란 계란(삶은 계란) 없어?"
그러다 어쩌다 큰 놈이 실수로 일찍 준비를 끝마치거나 막내의 입에 꼭 맞는 반찬이 등장하거나 둘째의 아침잠이 덜 한 날, 세 놈이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아침을 먹을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몽글몽글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미안할 정도로 벅차오르는 이 감정이 바로 '행복' 일까.
삼십 년 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을 차린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비단 위를 채우는 포만감과 영양만이 아닐 것이다. 온종일 집 밖에 머무르며 혹여나 마음이 다치고 속이 상하는 순간이 오더다도, 엄마를 생각하면 든든하도록, 외롭지 않도록, 힘이 나도록. 뱃속을 뜨뜻하게 채워 보내고픈 마음 때문이다.
내일 아침은 무엇으로 아이들 마음을 채워 보낼까.
오늘도 냉장고 속을 여러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