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전문직이다(2)
매일 새벽 다섯 시 반, 식구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나 주방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다름 아닌, 남편의 도시락 반찬.
올해 쉰이 된 남편은 일 년 전 당뇨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식단관리를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체중이 15킬로그램 줄고 지방간도 싹 사라졌다. 혈당이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바지를 모두 새로 사야 할 정도로 허리 치수가 줄어들었다. 이는 물론 남편의 노력 덕분이지만 내 도시락도 큰 몫을 차지했다 자부한다.
1년 전 남편의 혈당 소식에 곧장 당뇨 책을 주문하고 식단부터 바꾸었다. 흰쌀밥 대신 현미, 귀리 등이 섞인 다양한 잡곡밥을 올리고 튀김과 구이 대신 찜과 데침으로 조리법을 바꿨다. 나트륨 범벅인 바깥 음식을 대신해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처음엔 달달한 시판소스 없이는 샐러드엔 손도 안 대던 남편은 올리브유와 소금만 살짝 뿌려도 채소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콜라 대신 얼음물에 탄 매실청 한 스푼이면 시원하게 갈증을 채우는 입맛으로 변모했다. 식사 후에는 꼭 과자 한 봉지를 먹어야 하는 습관도 사라졌고 공복을 즐기는 여유마저 생겼다.
혹자는 매일 새벽잠을 줄이며 남편 도시락을 싸는 내게, 당뇨식이고 샐러드고 간편하게 배달되는 세상에 뭐 하러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애 셋 키우는 것도 버거운데 남편 도시락까지 싸게 생겼느냐고, 남편이 오죽이나 돈을 잘 버는가 보다면서 얼핏 들으면 칭찬 같은 조소를 날리지만 나는 이 또한 프로 주부로서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건강을 살피고 식단을 꾸리는 것, 애써 사랑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전문직 주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다.
남편은 매일 점심 도시락을 열며 "오늘은 과연 어떤 반찬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이라고 한다. 가끔 사진을 찍어 보내며 감사를 표한다. 혈당이 떨어진 건 내 정성 덕분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흔히 주부라는 직업을 말할 때 월급도 휴가도 없는 불평등 노동이라 하지만, 감히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은 연봉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
그러니 오늘도 밥을 지으며, 빨래를 하며, 설거지를 하며 내가 하는 일이 혹여 하찮고 의미 없고 공허하게 여겨진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주부는, 아내는, 엄마는 전문직이다. 돈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 해서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주부가, 엄마가, 아내가 하는 일은 가정의 중심이고 그것은 몹시 중요한 일이며 그것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따라 가족 생활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의 능력을 애써,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