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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Apr 24. 2024

비행기에도 노키즈존이 필요할까?

엄마도 전문직이다(4)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비행기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는 제목의 릴스를 보았다. 15 초남짓 되는 이 영상상에는 한 남자(여행 유투버)가 비행기 좌석에 헤드폰을 낀 채 앉아있고 바로 옆자리, 여성 보호자가 안고 있는 아이가 발로 남성을 차며 짜증을 내는 모습이 담겨있다. 영상아래에는 별다른 구체적 상황 설명 없이 "해외여행 할 때 비행기 자리 운도 따라줘야 한다"라고 적었다.

이 짧은 릴스는 순식간에 5만 개 이상의 좋아요, 와 수많은 댓글을 양산했다. 예상대로 현재 댓글창은 상반된 의견으로 나뉘어 격하게 토론(이라 말하고 비난과 욕설로 읽는다) 중이다.


의견은 두 가지로 갈린다.

1. 부모가 통제 안 되는 연령의 아이들은 비행기 태우면 안 된다. 다른 승객에게 방해가 된다. 비행기에도 노키즈존을 만들어야 한다. 저럴 거면 애 낳지 말아라.

2. 어린아이이므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 가장 놀란 것은 언제부터 우리가 이토록 이기적이었나,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아이가 있고(무려 셋), 특히 영상에 등장한 또래의 유아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해하는 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을 통해 성인이 된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 아마 영상 속 아이보다 더 많이 칭얼대고 짜증 내었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부모로서 아이의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살 영상 속 보호자가 아이의 짜증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15초의 짧은 영상 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이의 짜증을 내버려 두었는지 아니면 아이를 업고 비행기를 두어 바퀴 돌고 사탕을 주고 영상을 보여주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는지 알 수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온작 노력을 한다. 아이가 비행기 안에서 앞 좌석을 발로 차거나, 큰 목소리로 말하거나, 칭얼대면 부모는 비행기 안 누구보다 심란하고 초조한 마음이 되어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부모들은, 글쎄. 이때껏 나는 보지 못했다.


긴 시간의 비행은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이는 더 할 것이다.  그럼 여행을 다니지 않으면 되느냐고 하는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만일 우리 부모님이 오랜만에 햄버거가 먹고 싶어 맥도널드에 갔다고 치자. 그런데 키오스크 주문법에 서툴러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는데도 불구하고 몇 분째 한자리에서 헤매고 있다면? 그럼 우리는 부모님께 "나이 들어 눈도 침침하고 전자 기기 작동법도 잘 모르겠으면 햄버거를 드시지 마세요."라고 말해도 될까?


비행기는 해외로 가기 위한 오직 하나의 이동 수단이다. 여행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아이만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가족 모두 해외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거나, 해외 사는 가족 중 하나가 큰일을 당했다거나. 그럼 그때에도 아이는 두고 어른들만 비행기를 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의 편리만 주장하고 약간의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는 이가 되었을까. 세상은 왜 이리 각박해졌을까. 정 많고 속 깊은 민족성은 어디로 갔을까(그런 게  본래 있었는지, 아니면 애국심 고취를 위한 사상교육이었는지 모를 일)?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서양인들도 아이들이 울거나 보채는 것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언젠가 나이가 들 것이며 어린 시절이 있었다. 조금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 볼 수는 없을까. 가뜩이나 애 낳기 꺼려지는 사회 분위기 속, 아이에 대한 너그러움이 사라진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아프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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