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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6

레트리버

  은은한 조명에 포근한 분위기의 작은 공간이다.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매우 잘 보인다. 나는 동그랗고 아기자기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푹신한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다. 내 건너편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앉아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곳은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지역상담센터이다. 주치의의 권유로 이곳에서 상담을 시작하기로 하고 오늘 처음 방문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지만 내 증상에 호전이 없어서 심리상담을 병행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레트리버는 손가락을 연신 움직이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와 시선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 어떻게 됐지요?”

  “제가 눈을 떴을 때는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였어요. 병원 응급실이었어요. 온몸이 다 아팠어요.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설명은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많이 아팠어요. 특히 손끝, 발끝이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아팠어요. 몸도 많이 부어 있는 상태였고요. 병원에서 이것저것 다 검사해 봤는데 이상한 부분은 없다고 했어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아팠거든요. 나중에는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연결해 줬어요. 다른 데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문제가 있다면 그쪽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요. 지금은 거기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상담도 같이 하면 좋을 거라고 했어요.”

  “제가 봤을 때는요, 고라니 씨는 지금 많이 아픈 상태예요.”

  “!”

  나는 깜짝 놀랐다. 병원에서는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면서 일단 약을 처방해 주었다. 의사들은 마치 내가 꾀병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약을 먹으면서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레트리버는 내가 많이 아프다고, 나를 믿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라니 씨는 지금 아픈 거 맞아요. 그래서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난 거고요.”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천천히 하면 금세 나을 수 있어요.”

  나는 레트리버를 믿어 보기로 했다. 레트리버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로 진행되었다.

  레트리버는 하얀 얼굴에 걸린 동그란 안경테가 조금씩 내려오면 콧등을 찡긋 하면서 안경테를 살짝 들어 올리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말했다. 여전히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요즘 제일 힘든 건 어떤 거예요?”

  “저 자신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무기력하게 있는 제 모습이 너무도 싫어요.”

  “회사 이야기인가요?”

  “저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뭔가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 안에서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의지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견딜 수가 없어요. 내가 그 정도도 견뎌 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거든요.”

  “고라니 씨, 이건 고라니 씨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세상이 잘못된 게 맞아요. 그건 바꾸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고라니 씨한테 큰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걸 테고요. 그건 당연한 거니까 나만 그런 거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일단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편히 하세요. 그리고 천천히 얘기하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회사에는 병가휴직을 냈다. 내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특히 소리와 진동을 느끼는 게 힘들었다. 모든 소리가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듯이 크게 울렸다. TV 볼륨이 조금만 높아져도 가슴이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에도 나는 불안해졌다. 또 길 건너편에서 신축하느라 쿵쾅대기 시작하면 그 소리가 마치 내 귓가에서 망치질을 하듯이 울려 퍼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괴로워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울었다. 뭐가 슬픈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기분 전환해 보겠다고 음악을 틀면 눈물이 나고 그림을 보다가도 눈물이 나고 멍하니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그 눈물에 나는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대화할 때는 말소리가 제대로 내 귀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려면 몸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싹싹 긁어모아야 했다. 그러면서 금세 지치고 결국 나는 다시 고립되곤 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 투명하고 견고한 벽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마치 뚜껑 없는 유리병을 거꾸로 세워놓은 그 안에 나 혼자 갇혀 있는 것처럼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자동차도 타지 못했다. 특히나 버스나 택시는 더욱 심했다. 차가 달리려고 할 때마다 커지는 엔진 소리, 자동차의 진동에 갑자기 숨이 콱 막힌다. 그것은 내가 죽을 것 같다는 공포심을 불러왔다. 그러면 나는 시트를 내려서 누운 채로 두려움에 벌벌 떨곤 했다.  

  엘리베이터도 그랬다. 사람들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모르는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베이터가 조금씩 흔들리기라도 하면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고 숨을 쉴 수가 없게 된다.

  때로는 과호흡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숨을 헐떡거리면서 마스크를 찾는다. 마스크를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병원에서 알려 준 방법이라서 마음이 놓여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레트리버는 2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났다. 그때마다 레트리버는 내 안부를 물었다. 몸 상태는 물론이고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체크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내 얼굴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증상이 생기기 전에 보통 전조가 있어요. 어깨랑 팔 안의 혈관이 찌릿찌릿하기도 하고 따끔따끔하면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전조가 느껴지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해요. 그 불안이 처음에는 작았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확 번지면서 무서워져요. 그 두려움에 제가 파묻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럴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해 보세요. 그런 몸의 변화에 신경 쓰지 말고요. 복식호흡을 해도 좋아요.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숨을 체크해 보세요. 내가 들이마신 공기가 내 온몸을 돌아서 다시 밖으로 내뱉는 그 사이클을 말이에요. 그렇게 집중하면 증상이 완화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다른 생각은 할 필요 없어요. 그런 증상이 생긴다고 해도 그걸로 인해서 죽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냥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 보세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상황이 생기면 공포심이 먼저 들었다. 나는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내 증세가 악화될수록 복용하는 알약의 수가 늘어 갔다. 매일 한 움큼씩 먹는 기분이다.

  그래도 레트리버는 서두르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대화하면서 내가 단어를 고르기 위해 머뭇거리거나 혹은 말하는 도중 울먹이더라도 레트리버는 나를 잘 기다려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공간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저는 모르겠어요. 치료한다고 약을 먹고는 있는데 그걸로 제가 나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그걸로 제 병이 나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제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든 게 그대로인데 제가 나을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경험이에요. 내가 위험하지 않다는 경험, 내가 안전하다는 경험이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 택시 타는 거 무섭지요?”

  “지하철도 아직 못 타요.”

  “그럼 지하철을 예로 들게요. 내가 지하철을 탔어요. 지하철이 달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몸이 마구 흔들릴 거예요. 그 상황에서 지하철에 같이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상상해 보세요. 지하철 소리도 지하철 흔들리는 것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을까요?”

  “무섭게 느껴지지 않아서요?”

  “왜 무섭게 느끼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거예요, 지하철 소리가 아무리 크고 지하철이 아무리 흔들려도 나는 아무 일 없이 안전하다는 걸요. 사실 지하철이 달리다가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죽게 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까지 뉴스에서 본 적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그런 거예요. 내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확신이 어디서 생기느냐? 바로 경험이에요. 지하철 소리가 아무리 커도 내가 죽지는 않아. 지하철이 제아무리 흔들려도 나는 말짱해. 이런 거지요. 고라니 씨는 이제 그 경험을 새로 해야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물론 어려워요. 하지만 그 경험들의 횟수가 쌓이면서 병이 낫는 거예요. 이거 하나만 명심하세요. 고라니 씨는 절대로 죽지 않아요.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고라니 씨 아픈 거는 분명 낫는 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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