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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5

사마귀

  노루와의 교류가 내게 활력을 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노루도 나도 이곳에 있는 이상은 벗어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었고 그 스트레스의 주원인인 사마귀는 여전히 고압적이었다. 노루도 나도 바짝 긴장한 채로 지내고 있었다.

  오후에 사마귀가 갑자기 팀원들을 호출했다. 우리는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사마귀가 시시껄렁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하다가 이내 잰 체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 있어요. 형식은 제한 없이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하네요.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팀에서는 전원이 공모전에 참여하면 좋겠어요.”

  팀원들은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동요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주어진 업무만으로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조직문화가 정말 싫었다.

  “팀장님, 지금 다들 바빠서 정신없는데 전원이 공모전에 참여할 필요가 있을까요? 개인 자율에 맡겨도 될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사마귀는 나를 한 번 노려보고서는 눈꺼풀을 내리깔고 말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라는 대표이사님의 지시사항이 있었어요. 아니,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거라는데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지. 다들 알았지요? 기한은 일주일이니까 신경 써서 하세요. 그리고 공모전에 신청하면 신청했다는 사실도 나한테 보고하세요.”

  팀원들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도 수첩을 정리하고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내 등 뒤에서 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라니 씨, 잠깐 나 좀 봐.”

  무슨 소리를 할지 뻔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사마귀를 따라 나갔다.

  사마귀는 복도에 나 있는 창밖을 바라본 채로 내게 말했다.

  “고라니 씨, 지금 몇 년 차지?”

  “15년 차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분위기를 몰라? 이러니 아직도 그러고 있지.”

  이건 비아냥 반, 협박 반이다.

  “본인 처지를 잘 생각하도록 해.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라니 씨는 공모전 꼭 준비하고 내게 먼저 보고해.”

  “…… 네.”

  사마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나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의지대로 내가 조종당하는 것을 보는 게 즐거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가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끔찍하게도 싫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타의로 한다는 건 싫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요약기획보고서도 만들었던 거니까. 그래, 기회가 어디서 올지 모르는 일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한번 해 보자. 잘되면 또 그만큼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업무를 하는 와중에 공모전을 준비했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기획하고 콘텐츠를 짜고 보고서로 완성하는 것은 보람찬 일이었다. 물론 주제를 정해서 구성하고 내용을 넣는 것이 제일 고된 작업이었다. 3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콘텐츠를 완성했다. 이제는 그것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다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 내 뒤에서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고라니 씨, 이게 뭐야?”

  나는 등을 돌려 뒤를 보았다. 사마귀가 내 뒤에 선 채로 내가 작업하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공모전에 제출할 보고서예요.”

  “세상에, 이렇게 잘할 거면서 왜 그렇게 뻣뻣하게 굴었어.”

  사마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이거 내가 한번 보고 싶은데 파일로 줄 수 있어?”

  “다 되기는 했는데 한 번 더 검토를 하려고요.”

  “내가 검토해 보고 나서 피드백해 줄게. 그 내용까지 추가해서 수정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마귀가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기는 했지만 이걸 내 단독 이름으로 공모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우리 팀 이름으로 제출하게 되면 다른 팀원들은 이 일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팀 이름으로 나가는 거라면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받는 게 더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었다. 그게 외부에서 볼 때도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제가 파일 드릴 테니까 필요한 부분 수정하시고 그 수정본을 저한테 다시 주세요.”

  “알겠어. 내가 내일 줄 테니까 고라니 씨는 얼른 퇴근해. 오늘 수고했어.”

  나는 별생각 없이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사마귀는 갑자기 분주해진 모양새였다. 뭐, 괜찮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날이었다. 사마귀는 아침부터 상당히 정신없어 보였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오전 내내 자리를 비웠다. 오후에 들어온 사마귀는 서류 뭉치를 챙겨서 다시 바삐 나갔다. 내가 공모전 얘기를 꺼낼 틈도 없었다.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어쩌지.

  그때 사마귀가 책상 밑에 떨어뜨리고 간 서류가 눈에 띄었다. 저건…… 눈에 익숙한 표지다. 나는 사마귀 자리로 다가가서 컬러풀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제출자 사마귀”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내가 어젯밤에 사마귀에게 건네준 그 보고서다. 나는 한 장 한 장 들춰 보았다. 구성이나 콘텐츠는 내가 짠 것 그대로이고 보충하는 설명이 두세 줄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 보고서를 한껏 구긴 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쓰레기통 안에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버려진 종이 뭉치가 나 자신과 같아서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방망이질하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뭔가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다음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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