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9

판다에게 보내는 편지

  선배님, 저는 지금 선배님과 제가 가끔 커피 마시곤 했던 장소에 있어요. 칙칙하고 어둡기만 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별세계 같던 그곳이요. 한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거기서 내려다보는 바깥 풍경이 선배님 계셨던 그곳을 연상시킨다고 하셨지요. 보도를 따라 죽 늘어선 나무들의 초록이 너무도 예뻤다고요.

  그런데 저는 이곳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명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은은한 오렌지색이 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곳에서의 괴로움이 제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저를 보호해 주는 것 같아서요.

  여기서 선배님과 커피 마시며 나누었던 인생의 대화들은 늘 즐거웠고 위안이 됐어요. 선배님은 제게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항상 말씀하셨지요. 선배님 세대 이후로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자리 잡을 거라고요. 그런데 저는 속으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 같은 대체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지금까지처럼 굳이 순서대로일 필요는 없지요. 손에 잡히는 대로 쓰는 게 편하니까요. 그리고 다들 그 손에 선택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거든요. 대열을 이탈하면서 먼저 달려가고 넘어지고 그래서 대열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오히려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선배님이 부러웠어요. 그래도 그때는 ‘이게 질서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당사자 스스로도 부끄러워서 감추었고 어쩌다 그 일이 밖으로 드러나면 여러 사람의 비난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부끄러움, 수치 이런 거 없어요.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용인됩니다. 더욱 견딜 수가 없는 건 모두가 이런 상황에 수긍하고 편승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선배님은 지금은 코트 밖으로 나가셨지만 코트 안에 있을 때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선수였습니다. 게임을 주도하는 리더였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선배님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반면에 저는 게임에 사용되는 공에 불과했습니다. 이리저리 튕겨 다니는 공이요. 심판이 바뀌어서 게임 규칙이 바뀌면 또 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항의조차 할 수 없어요. 저도 선배님처럼 항상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용만 당하고 인정은 못 받은 거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오히려 제가 눈에 띄는 공이어서 필요할 때만 사용되고 버려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대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님이 회사를 그만두셨을 때 저는 기뻤습니다. 선배님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하고 말도 안 되는 곳을 벗어나셨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저렸습니다. 저 혼자 남게 돼서 외로웠거든요. 제가 마음을 열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요.

  가만 보면 사람들은 항상 무리 지어 생활합니다.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니는 걸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뭔가 부족한 사람, 뭔가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취급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혼자입니다. 항상 같이 일하고 항상 같이 먹고 항상 같이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런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게다가 같이 있으면서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상대방에게 고통을 줍니다. 모두들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서로가 그런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 될 텐데 또 그렇게는 안 하더군요. 오히려 그 고통으로 생긴 상처를 헤집어 쓰러뜨린 후 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서 우쭐해합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 눈에 들어간 티끌 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크다고 우깁니다. 나만 힘들다고 떼를 씁니다. 나만 아프다고 보챕니다.

  예전에 어느 선배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해안가 절벽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소나무로 튼튼하고 큰 배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이곳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이겨 내고 지금껏 버텨 왔는데 저는 지금 좋은 소나무일까요? 정말로 좋은 배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많은 고민 끝에 이제 겨우 마음먹었습니다. 누가 나를 배로 만들어 주기를 더 이상 바라지 않기로요. 제가 직접 나서서 튼튼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워 저 멀리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그간의 시간들을 허비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작은 몸집의 개구리가 자신보다 훨씬 높이까지 뛰어오르기 위해서 몸을 한껏 움츠리는 것처럼 저도 도약을 위한 움츠림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선배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길에 또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또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될까 봐 걱정도 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요? 사람으로 인해 그렇게 고통받았는데 또 사람을 찾아가다니요. 결국 열쇠는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그래서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어린 가재가 자신을 보호해 주던 딱딱한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이유가 뭘까요? 애벌레가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린 가재가 자신의 딱딱한 껍데기를 벗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사이에 혹시 천적이라도 나타난다면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린 가재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탈피를 합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성인 가재가 됩니다. 애벌레는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도중에 포기하면 그저 애벌레일 뿐입니다.

  이처럼 변화를 위해서는 탈피의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결단입니다. 내가 탈피하겠다는 결심 말입니다. 물론 탈피에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하지만 어른 가재가 되는 것을, 나비가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견뎌 내야 합니다.

  앞으로 제 앞에 어떤 시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배를 타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로 나아갈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른 가재가 되는 것을, 나비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는 어른 가재가 있고 또 나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존중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존중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선배님, 말이 길어졌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전 18화 소설 고라니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