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 솜사탕
율무와의 첫 만남은 신기하게도 내 꿈속이었다. 나는 꿈이 꽤 정확한 편인데, 율무와 만나기 몇 달 전이었다. 노란 털이 복슬복슬해서 노란색 솜사탕 같은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꿈을 꾸었는데, 일어나자마자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엄청 귀여운 강아지랑 산책하는 꿈 꿨다고, 혹 예지몽 아니야? 하며 난리였다. 안 그래도 언젠간 강아지를 데려와야 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런 꿈을 꿔서 꽤 기뻤던 날이다.
율무를 데려오게 된 계기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부고였다. 그로 인해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는 공황 진단을 받고 한국에서 쉬기로 했다. 아빠의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의 혼란까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 분명 아니었는데 이 갑작스러운 충격이 내 마음을 독하게 헤집어 놓았다. 내 마음을 치유해 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 당시의 나의 집은 한국이 아닌 일본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 힘들다고 언제까지나 집을 떠나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다시 강아지를 데려오자. 강아지만이 나를 치유해 줄 수 있다는 것.
율무를 처음 본건 포인핸드에서였다. 율무는 키우던 인간 본인이 임신해서 버렸다고 했다. 그것도 늘 자주 맡기던 미용실에. 천벌 받기를 바란다. 율무는 그 이후에도 몇 번 입양을 갔다고 했다. 어리고, 적당한 크기에 이렇게나 예쁜 얼굴을 당연하게도 여러 집에서 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입양 간 곳에선 생각보다 너무 사납고 입질이 심해서 못 키우겠다고 파양을 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열수 있게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본인이 가장 약한 순간에 똑같이 버려지길 바란다면 저주일까? 상관없다. 아마 그때 우리 율무의 마음이 닫혀버린 게 분명해서 천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기를 바란다. 이 작은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없다. 상처를 안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우리 율무를 포기해 줘서 아주 고맙다는 마음이다.
율무를 임시보호 해주시던 분은 네일샵을 운영하시는 분이었는데 율무가 마음의 문을 닫아서 너무너무 사납다고, 몇 번이고 설명을 해주셨다. 여러 신청자가 있었지만 나는 강아지 키웠던 이력(?)이 많기에 선정되었던 것 같았다. 남편의 여름휴가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어 날짜를 맞춰 함께 율무를 데리러 갔다.
처음 만난 율무는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이 세상 모든 것에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손을 뻗었을 때 바로 시험에 들었다. 엄지손가락을 대차게 깨물었다. 사실 쌀알보다 더 작은 이빨로 깨물어봤자였다. 그렇지만 그 아린 손가락이 율무의 마음인 것 같아 잠시 슬퍼졌다. 그리곤 그냥 마음먹었던 것 같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달래주고 나도 위로받으리라.
마음의 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단단하게 닫혀있었다. 데리고 온 첫날, 또 버려질까 맘 편히 잠을 잘 수 없던 율무는 앉아서 잠을 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를 까고 누워있는 자세가 하루의 90퍼센트인 애가 앉아서 자려면 얼마나 경계했길래,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내 바람과 달리 율무를 데리고 온 한 달은 지옥이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내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코와 입술까지 깨물어보던 율무였다. 내가 이렇게 해도 나를 키울 수 있어? 하고 시험에 드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그 시험이 나도 힘들긴 했다. 그냥 조금만 나를 믿어준다면, 그냥 마음을 열어준다면 난 너에게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데… 하고 율무를 안고 울기도 했다. 이곳저곳을 깨물며 나를 시험하던 율무는 딱 한 달이 지나자 마음을 열었다. 아주 작은 마음이라 그 문도 작았는지 오직 나에게만 열었다. 비로소 내가 율무의 세상이 되었다.
이 작은 마음은 아주 정확하다. 요즘 유행한다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남자 주인공처럼 오직 나만 사랑한다. 같이 동고동락한 지 5년이 지난 율무아빠도, 만날 때마다 온갖 간식과 수십 번의 산책으로 꼬시는 할매도 율무의 마음을 다 얻진 못했다. 율무아빠는 남자에, 목소리도 굵은 편이고 동작도 큰 편이라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꽤나 영리해서, 내가 없으면 아빠를 찾고 아주 의지한다. 호텔이나 미용실에 맡긴 후 데리러 갔을 때 내가 없으면 엄마는!! 이렇게 짖고 난다음 아빠밖에 없다는 걸 알고는 아빠품에 안긴다. 그리고 숨어있던 나를 발견하곤 아빠를 내팽개친다. 겨우 삼 킬로의 털북숭이 마음이 참으로 복잡하다.
율무는 한국에서 만났고 내가 살던 곳은 일본이었기 때문에 율무를 일본에 데려가야 했는데, 일본은 광견병 청정국가라 그 절차가 매우 복잡했다. 광견병 주사를 맞히고 율무 피를 뽑아 혈청을 분리하고, 냉동으로 특수우편을 이용해 일본으로 보내 검증가능한 기관에서 율무가 광견병 항체가 있는지 없는지 확답을 받아야 일본으로 데려갈 수 있다. 그리고 항체가 생겨도 신청 후 한국에 계류 기간이 6개월이 되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복잡한 절차였다. 물론 그게 법이라면 따라야겠지만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사실 항체라는 것이 강아지라고 다 있는 것이 아니어서 혹시 항체가 생기지 않을까 두렵고 걱정되었다. 그래도 걱정과는 달리 검사는 잘 넘어갔고, 일본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뻔질나게 드나들 때 이용한 대구 - 나리타 저가항공은 국제선 반려견 동반불가고 국적기만 가능. 하지만 율무를 데리고 동대구 - 서울역 - 인천공항은 너무 고된 길 일 것 같아 아예 대구 - 인천 - 도쿄로 노선을 정했다. 율무에게 말했다. 우리 율무덕에 국내선도 다 타본다고. 율무는 대구에서 인천, 인천에서 나리타, 나리타에서 집까지 대략 7시간을 가방 속에서 아주 기특하게 얌전히 잘 버텨주었다. 이제 우리가 계속 살 집이야. 말하고 처음 일본 집에 들어섰을 때 빙글빙글 돌던 예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율무와 함께 일본에 입국 한 다음 날, 전 세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순차적으로 락다운이 시행되었고 가족비자인 사람들도 입출국이 제한되었다. 한 발만 늦었다면 엄마집에 나와 내 강아지까지 근 2년을 얹혀살 뻔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율무와의 만남이 위로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지사다. 사실 모든 아픔은 바쁨으로 지워진다. 아빠의 부고,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삶에 율무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옥에서 살 것이다. 율무와 함께 걷고, 햇빛을 보고, 안고 꼬순내를 맡으며 잠드는 사소한 시간들이 나를 살려냈다.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해가 어스름하게 지던 시간에 율무랑 산책을 하다 모르는 동네까지 넘어갔을 때였다. 어두워질 무렵에 낯선 동네. 우리 지역은 완전 도시가 아니라 외진 곳이 많아 살짝 무서운 느낌도 있었지만 율무와 함께라 그대로 온 길을 돌아가면 되지. 가볍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당시 공황도 있고, 작은 실수에 쉽게 좌절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렇게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에 율무의 공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보리차 하나 사서 율무랑 나눠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의 산책이 불면인간인 나를 곯아떨어지게 만들어 아주 개운했던 다음날 아침이 기억난다.
사람은 큰 것 하나를 성취하는 것보다 생활에 작은 것을 하나하나 성취하는 것이 더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던 나를 이 작은 강아지가 올려다 봐줄 때,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작은 아이를 내가 지켜줘야지. 이 소심한 마음을 더는 다치게 하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더욱더 단단해져야지 하고 다짐한다. 일상에서 이런 굳은 다짐들을 내내 하는 건 아니고 이렇게 진지할 수도 없다. 오늘 아침에도 율무랑 서로 으르렁 했지만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율무와의 처음 만남을 꼭 기록해보고 싶었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했으니 대학 가야지.
오래오래 건강만 하자. 사랑해 우리 율무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