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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시인의 "구들목"

겨울의 낭만에 대하여

by 박바로가

구 들 목 /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짓달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


요 며칠 시베리아 겨울보다 추웠다고 혹자는 말한다. 그러나 예전에 우리에게는 겨울이 더 추운 시절이 있었다. 그 변변한 옷도 없던 시절! 지금의 오리털 파카와 구스 다운 파커와 같은 옷들은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다. 물자도 귀해서 어젯밤에 기운 양말을 오늘 저녁에 다시 기워서 내일을 하루 보내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적화자는 1연에서 3연까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펼쳐내기 시작한다. 그 시절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는데 이 광목은 그리 따뜻한 천은 아니다. 그 안의 무명 솜이 겨울을 나게 해주는 재료였다. 그런데 그 이불이 사람 숫자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한장 있었을 뿐이었다. 방바닥만큼 넓다고 했으니 결국 집 역시도 그리 넉넉한 크기는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추운 겨울 아침을 하면서 구들목에 방을 데우면 집이 오후 내내 식지 않도록 방바닥을 온기를 잡으려고 무명 솜이불을 펼쳐놓았고 그 안에는 "뚜껑 덮인 밥그릇"을 넣어 밥을 뎁히게 하는 지혜도 있었다.

4연과 5연에서 추운 겨울 구들목으로 가족이 모여드는 모습을 그려낸다. 낮 12시에 오포소리가 울리면 방 아랫목에 있는 보리밥을 먹으러 들어왔고 일이 끝나고 "호호 불며" 집안으로 들어온 식구들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다. 지녁이면 일곱 식구가 그렇게 아랫목에 옹기종고 모여 발을 맞대고 가족의 "사랑을 키웠다."

어려운 때를 같이했던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가족들의 마음에 남아있다고 6연에서 말한다. 그 때 생각해면 마음도 숙연해지고 눈가에 이슬도 맺힐 정도로 힘들었던 삶이었지만 그 뒷면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7연에서는 집에서 자란 콩나물에서 "겸손과 배려"를 배웠고 "벌겋게 익인 자리"가 아버지 자리였음을 알았으며 그 중심이 바로 책임을 묻는 자리였음도 알았다고 말한다. 그 책임의 보호하에 가족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이 익어가듯 "겸손과 배려"를 배우며 자라났다.

8연에서 동짓달 기나 긴 밤조차도 가족과 삶은 고구마 먹던 추억으로 가족의 정을 흠뻑 느꼈던 회고를 하고 있다.

9연에서 시적화자는 그 때를 그리워하며 눈오는 날 그 때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마지막 10연에서는 예전에 있었던 추억에 다시 빠지며 물질적으로 부족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가족에서도 그런 사랑이 겨울 눈 오듯 소복이 쌓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시 속의 시적화자는 눈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져와 과거를 오가면서 구들목에서 쌓아왔던 가족의 정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에는 구들목이라는 존재가 없어 가족과 소원하다는 숨겨진 비교도 드러내고 있다.


#가족의정 #정 #가족 #구들목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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