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을 겪으며
겨울 산에 밤이 내리면
박철언
잎도 온기도 없는 깊은 고요
발아래 계곡 멀리 희미한 불빛들
엄동의 바람 속 작은 암자에
칠흑 같은 밤
장엄한 소리를 내며 우는 산
나도 따라 우는 밤
지나온 힘든 세월 잘 견뎌 온
스스로가 대견해서
발마다 따라오는 산의 아찔한 바닥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희미해질지라도
그대, 의식을 힘껏 붙잡으라
호흡도 맥박도 단단히 짚어라
아파도 딛고 건너야만 하는 시대
시대를 대신해서 우는 걸까
겨울 산은 밤마다 울고 있다
나도 따라 울고 있다
이 시를 맨처음 읽었을 때 겨울 산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보았다. 나무도 산도 벌거숭이가 되는 겨울의 시간, 그 시간 속에 우뚝 선 산, 겨울 산. 벗어 던진 푸른 잎사귀탓인지 이승보다 저승의 이미지에 가까운 겨울산. 그런데 우리나라의 70 퍼센트가 산이라는 것을 가만한다면, 겨울산은 우리 민족이 살아온 아픔을 같이해 온 산이 아닌가 싶다.
5천년의 무구한 역사동안 우리는 5천번 이상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똘똘 뭉쳐 어려운 일들을 꿋꿋이 이겨내왔다. 역사의 주역인 우리나라 모든 개개인들은 힘든 겨울산에서 칠흑같은 밤이 왔어도 "장엄한 소리를 내며 우는 산"을 모방해서 "나도 따라 우는 밤"을 맞이한다. 그 이유는 "지나온 힘든 세월 잘 견뎌 온 스스로가 대견해서"이다. 역사의 한 귀퉁이를 울음으로 장식하며 한국인으로의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3연과 4연은 4행 구조를 가진 1, 2연에 비해 파격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 3, 4연에서 시적화자를 통해 무엇인가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메세지는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는 "칠흑 같은 밤"이 겨울 산을 덮쳐오면 무서워 공포에 떨지 말고 "의식을 힘껏 붙잡으라"라고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밤의 공포로부터 "호흡도 맥박도 단단히 짚어라"라고 부탁한다. 겨울 산도 힘든 데 그곳에 밤조차 우리를 힘들게 하면 위압감에 눌리지 말고 자신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특히 3연의 5행에서 "아파도 딛고 건너야만 하는 시대"라는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메세지를 통해 겨울 산이 그냥 겨울 산이 아닌 우리나라의 힘들고 고된 역사를 빗댄 말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4연에서는 겨울 산이 "시대를 대신해서 우는 걸" 목격하고 그것을 같은 상황으로 겪고 있는 시적화자 역시 그 고통에 찬 겨울 산의 울음을 나도 같이 토해낸다. 1,2연에서 4행으로 겨울산과 나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칠흑 같은 밤"이 닥쳐도 밤을 이겨내며 겨울 산의 웅장한 울림과 나의 울음이 공명하는 것으로 우여곡절이 있는 시대를 가까스로 이겨내왔음을 암시한다. 그것을 더 심화해서 3, 4연에서는 5행과 3행이라는 변화를 준다. 예를 들어, 각 연을 똑같은 시간을 주었다고 가정한다면, 5행으로 이루어진 3연을 네 개의 연 중에서 가장 숨 가쁘게 헐떡이듯이 시행을 읽어가게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4연은 행이 1개가 적은 3행이어서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좀 더 새겨 읽게 되는 여운을 느끼게 되면서 강한 메세지를 읽어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1,2,3연에서 겨울 산과 칠흑같은 밤의 대립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을 4연의 3행으로 느릿하면서도 강하게 읽으면서 "시대를 대신해서 우는" 겨울산을 보고 "나도 따라 울고 있다"라는 말로 어두운 시대에 지지 않고 강한 마음으로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다짐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