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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바로가 Dec 23. 2024

박재삼 시인의 "겨울나무를 보며"

나무와 인간의 삶 이야기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스물 안팎 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 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 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써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총3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는 나무의 일년의 삶을 사람의 평생의 삶과 연결시켜서 인간 삶을 시각화시킴과 동시에 철학적으로 풀어낸 시이다.

   시적화자는 나뭇잎이 풍성한 시기를 인간의 삶에서 스물 안팎의 청춘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삶이 그 때에는 무엇인가 꿈을 쫒아 살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시기이다. 연애도 하고, 이상도 쫒고, 취업에 매진하고 계속 "숨 가쁜" 삶을 살아간다. 이상도 사랑도 사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할 만큼 그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 속에서 허덕이며 항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과 그기움을 느끼고 살아가는 나이가 바로 이 시기이다.

  두번째 연에서는 마흔에 가까워 온 자신을 돌아보는 시적화자가 눈에 뜬다. 마흔에 나이이면 불혹이라하여 어떤 것도 의혹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시기를 맞은 시적 자아는 자신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 버렸다"고 표현한다. 더이상의 군더더기도 없고 자신을 흔들어 놓는 사랑과 이상도 어느 정도 자신의 삶에서 자리를 잡았다. 어느 정도 이루었고 어느 정도 버렸어도 마음의 평정을 찾고 떠나 보낼 것을 떠나보낸 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 시적 자아는 "탕에 들어앉아"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다가온 나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느낀다. 나이 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로보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장년기는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를 봄으로써 자신의 노년기도 예측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경치를 보면서 "보금씩 확인할 따름이다"라고 표현한다.

  전체적으로 "겨울나무를 보며"의 박재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나이를 들어가면서 안분지족하는 인간의 삶을 나무의 잎을 떨어뜨리는 현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무가 한 해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뭇잎을 떨궈내는 것처럼 그 동안 자신이 바빠서 돌보지 못한 자신을 내적으로 끌어앉는 시간이 바로 마한이 넘어가는 시기의 삶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끌어앉고 자신의 내부를 들어다보는 숙성의 시간.... 그래서 노을의 붉어감이 인생의 익어감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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