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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바로가 Dec 09. 2024

로나 박의 "삶"

사람앓이

삶(사람앓이)     by 로나 박


작은 생(生), 다른 생이 할퀴어 상처내어

생채기 곪고 썩어 홍시가 터져나도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사람앓이로구나!


삶이란 묘한 정수(精髓), 사람이 되는 글자!

사람이 준 상처는 아물지 않지만은

그래도 고귀한 아픔, 사람앓이로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겠지요. 하지만 생각과 욕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이 달라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를 스스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욕망의 크기가 다르면 욕망이 큰 사람에게 희생당할 수도 있습니다. 

  선연은 좋은 인연으로 가장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덜 주고 자신의 욕망을 상대방에게 맞춰서 같이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악연인 경우엔 사람사이의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더 손해를 보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욕망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연이든 악연이든 한가지 얻는 것이 있다면 사람때문에 아프고 사람때문에 괴롭고 사람때문에 슬프고 사람때문에 핍폐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해하는 경우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이지요. 그만큼 사람들은 악연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의 신체를 다치게 하는 것을 제외한 약연(살인, 살인치사, 학교폭력 등 제외)은, 아니 선연조차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인연이어서 상처가 조금 덜 한 것은 아닐 것이고 악연이라서 받은 상처가 쉽게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각과 욕망의 크기가 다릅니다. 옛 선현께서는 인간의 그릇이라고 표현하셨지요. 소인, 대인라고도 표현하기도 하였지요. 예의가 있는 사람과 무례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지요.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내재해있습니다. 그러니까 상처를 받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아픕니다.

  하지만 이런 아픔을 허접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가 무엇때문에 아파하는지, 그 사람의 의미는 나에게 무엇인지, 이 아픔이 나를 어떻게 아프게 하고 성장시킬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야 몹시 고통스럽겠지만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결국 인간 사이에서 무수한 긍정적인 반응과 아픔 및 고통을 얻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픔이 조금씩 잊혀져가면서, 그것이 무리생활을 하는 인간의 한 모습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그 아픔때문에 내가 남에게 준 아픔을 생각해보게도 됩니다. 그러면서 나만의 삶에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이런 일들이 생겼을 때 몹시 힘들지만 그것도 나와 상대방이 어차피 겪어야할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합니다. 물론 무방비로 당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언변이나 행동은 꼭 갖출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방어적으로 사람을 피하거나 기피하는 것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자신을 돌보면서도 상대방에 의해 받은 상처와 내 자신이 상대방의 마음에 준 상처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인간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뇌는 그 복잡한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항상 고민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무리생활하는 동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 항상 어떻게 교환작용을 이뤄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중에 상처로 마음이 아픈 일을 겪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아픔이 위대한 것은 한번 아파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픔을 받아들이고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한번 인간관계로 들어가 사람을 다시 품으며 그 안에서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길러 자신에게 맞는 선연을 만나고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미워하여 담을 쌓고 사는 방법을 택하기 보다 사람앓이를 하면서 좋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나가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나를 충분히 사람으로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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