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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바로가 Dec 16. 2024

이상국 시인의 "산그늘"

삶의 관조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 그늘을 바라보았다


이 시는 두보의 시, "강촌"을 떠올리게 한다. 7언율시인 강촌에서는 앞 4수에서는 강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뒷 4수에서는 어려운 삶에 대해 안분지족(자기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대가 전한 말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안분지족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관조하려는 시인의 의도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이상국 시인의 "산그늘"도 시에서 "산 그늘을 바라보았다"라는 말에서 그의 삶이 그냥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첫 행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로 시작한 이 "산그늘을 보는 행위"는 근심걱정이 없는 행위라기 보다는 자신의 고된 삶을 위로하려는 행위나 자신의 삶을 자연을 통해 객관화하려는 행위로 보인다. 젖을 물릴 아이가 있는데 멀리 장을 보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젖먹이가 있어도 생활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무거운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의 일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우선 급하게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했을 것이고 그 이후 식구들 식사를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가 해산하고 몸을 충분히 풀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편안하다는 일언의 이야기도 없다. 혹은 시어머니와 어떤 관계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산그늘을 보는 행위"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뒤에 시적 화자가 살짝 언급한 마지막 행과 다시 반복댓구를 이루면서 그냥 "산그늘을 보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두번째 행에서 "냇물처럼 멀리왔다"며 말하는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향을 떠나온 자신의 처지를 말한다. 그런데 "가도 가도 그곳"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디 가서도 비슷하게 사는 삶 속에서 삶의 애환을 느끼고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냇물처럼" 흘러서 떠돌아 다녔지만 그의 삶은 어딜 가든 비슷한 상황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가하는 추측이 생긴다. 

  그래서 살펴본 세번 째 행에서 그는 약간 개괄하 듯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해 지고 어두우면"이란 시기는 한국 역사중의 어두운 시기였던 것으로 짐작되고,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은 그 시기에도 목소리를 꺾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올바르지 못한 상황에 맞춰싸우려고 노력한 화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독재의 시기 동안, 군부 독재의 시기 동안 시인이 해방후 태어난 해방둥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큰 소시로 부르러했던 노래들은 그냥 재미로 불르려고 했던 노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받쳐주는 행이 바로 네 번째 행이다. 그는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라는 표현으로 "살고 싶었던 세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결국 그의 삶은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게 흘러가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래서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은 항상 본인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세계로서 존재했고 플라톤의 이데아 론처럼 현실의 존재하는 것들이 이상을 표현하기에는 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는 "기러기처럼 살았다"고 표현한다.

  그러다보니 예언자처럼 외로운 삶을 살아갔으리라 짐작이 된다. 예연자는 외로운 법이다. 시대를 미리 앞서서 보고 시대의 문제점을 알기 때문에 다가올 시대에 대한 예언을 하는 존재이다 보니 시적 화자는 몸부림치게 외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다가 외로우면 산 그늘을 바라보았다"라고 표현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기 위해 불평하기 보다는 산그늘을 보며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그 높은 산에도 산 그늘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갔던 것처럼 시적화자도 그 사실을 인지하며 산그늘을 바라본다. 

  어쩌면 산은 높을 수록 그늘이 더 크게 드리울 수 있다. 어머니의 이상적인 삶과 시적 화자의 이상적인 삶 모두 그 크기에 있었어 어느 산의 높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산이 마음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굴곡진 세월과 시대를 거치게 하면서 두 사람에게 힘든 과제를 떠맡겼으리라. 하지만 분노나 좌절대신에 '높은 산'이라서 생기는 '그늘'을 항상 바라보며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삮이며 더 큰 산을 마음에 품었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다시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외로움'이 찾아왔겠지만 그것도 이상을 크게 품은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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