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공

생산성, 효율성, 우선순위에 대해서

by 작연


바다에 가자. 낚시를 하자. 시골집을 고치자. 마당에 꽃을 심자. 나무를 키우자. 물을 주자. 알람을 지우자. 그저 그렇게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이 들면 자자.


공은 멈춰있다.
사방이 유리벽으로 싸여진 큐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어느새 정육면체의 큐브는 점점 작아졌다.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퉁퉁’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단단한 유리벽은 조금의 실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벽엔 ‘생산성, 효율성, 우선순위’ 세 글자가 적혀있다.
공은 세 글자 안에 갇혀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산다는 건 무엇일까.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할까.
유튜브, 블로그, SNS 등 수많은 화면 속에서 비교하며 이 정도론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수없이 떠든다.

열심히 살고 싶었다. 열심히 사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집에서는 엄마들이 자랑하는 옆집 딸보다 착한 딸이 되어야 했고, 밖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집어 든 많은 베스트셀러는 ‘목표를 세워라. 정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세워 실행하라’고 말했다.



공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멈춰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생산적인가 생각한다.
그게 아니기에 죄책감에 휩싸인 공은 어떻게든 ‘퉁퉁’ 벽을 쳐내본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짜여 진 시간표와 틀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싫었다. 자퇴를 생각했다. 틀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고졸이라는 타이틀마저 중요했다. 그런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유리 벽 밖으로 보이는 남들의 시선에 목숨 걸고 타이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라. 늦게 자지 마라. 공부해라. 그런 잔소리는 없다.

틀을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는 스스로의 틀을 만들고 있었다. 빡빡하게 해야 할 일을 적었다. 시간 계획을 세우고 시간에 맞춰 목록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결국 해내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옥죄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라며 죄책감으로 똘똘 뭉친 공이 되었다.

공은 큐브 안에 여전히 ‘퉁. 퉁.’ 거리고 있다.

공은 어느 날 생각한다. ‘최고가 아니면 실패한 것일까.’
최고가 되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단 한 번도 최고가 되어본 적은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만든 기준은 높았고 기준을 맞추지 못해 만족하지 못했다. 이미 공은 계속되는 몸부림에 곳곳에 멍이 들고 상처투성이였다. 계속 이렇게 퉁퉁거릴 수 없다 생각했다. 아팠다.




공은 멈춰있다.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아파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아파 유리 밖 시선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공은 유리 벽에 비친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이 보였다.
그 모습에 아픔보단 슬픔이. 슬픔보단 분노가 앞섰다.
공은 튀어 올랐다.

“챙.”

둥그렇게 웅크린 몸이 펴졌다. 천천히 일어나 조금씩 유리 조각을 털어냈다. 털어지지 않는 조각들은 온몸에 박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처음으로 만족했다.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 틀 안에서 퉁퉁거리지 말자.’


바다로 가자. 낚시를 하자. 시골집을 튼튼하게 고치자. 꽃과 나무와 함께 햇볕을 받으며 살자. 따뜻한 그 공간에서 천천히… 박힌 유리 조각을 빼자. 급할 것 없다. 서서히 회복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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