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이제 매너를 생각할 때(8)
서울에서 농산물판매행사가 있었을 때의 일이다. 행사장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툭 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얼굴을 보니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만난 누구인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땐 누구나 난감해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눈치껏 아는 체 할 수밖에 없다.
“어휴, 오랜만입니다”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속으로는 ‘이 사람이 누구더라? 누구더라?’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면서 겉으로는 “잘 지내시죠? 어쩌고저쩌고…” 몇 마디 말을 더 이어갔다. 그런데 상대방이 싱글싱글 웃으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저, 누군지 아세요?”
아! 그때의 황당함이라니! 사람을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는단 말인가. 나는 엉겁결에 “아, 그럼 알고말고요”하고 한발 더 내딛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아예 수렁 속으로 빠트릴 작정이라도 한 듯 “제가 누군데요?”라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이건 확인사살이다.
결국 나는 안색이 벌게지며 허둥댔고 그 사람은 썰렁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자기를 모른다는 데 대하여 크게 실망한 것이다.
살면서 나는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내겐 ‘저, 누군지 아세요?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다. 아마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상대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상대방과의 인간관계는 성큼 가까워진다. 그래서 사람을 기억하라, 이름을 기억하라는 인간관계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이 급변하고 수용해야할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기억용량에 한계를 느낀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의 감퇴는 더욱 분명하다. 당연히 사람을 기억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중요하다. 그러나 잊지 말라. 사람마다 기억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그런 것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빵점인 사람도 있다.
따라서 “저 누군지 아세요?”라고 묻는 것은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다. 기억력이나 관심도를 테스트하는 질문이 될 수 있고, 만약 상대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피차 입장이 곤란하게 된다.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어 인간관계를 썰렁하게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날 때는 “저는 어디 사는 아무개입니다. 아시죠?”라며 자신을 다시 한 번 소개하는 것이 센스요 재치 있는 매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 시내의 대형서점에서 책을 쓴 저자의 자격으로 공개강의를 했다. 이어서 즉석 사인회가 열렸다. 많은 독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기에 사인을 하는 나로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왜냐면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대방의 이름을 쓸 때는 긴장이 된다. 만약 글자 한자라도 잘 못쓰게 되면 독자의 책을 훼손시키는 결과가 되니까. 예를 들어, 독자가 책을 내밀며 “진승언입니다”라고 이름을 말했다면 ‘김승언’ ‘진성언’ ‘김성은’ ‘진승은’ 등등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 중에는 발음이 불명확한 이가 많아 몇 번씩 확인하며 사인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센스 있고 매너 있는 사람은 다르다. 자신의 명함이나 이름을 적은 작은 종이를 사인을 받아야할 페이지에 끼워서 내미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방법이요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려줌은 물론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가 색다르게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재치있는 작은 언행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매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