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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y 02. 2024

나쁜 꿈보다 하루

 오늘 아침은 나쁜 꿈을 꾸지 않고 깨어났다. 며칠 만에 처음이다. 며칠 내내 꾸었던 꿈들 때문에 다시 나의 불안증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래 다시 시작된 엄마의 병환이 이전의 엄마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다는 나 나름의 판단 때문이었을까 이러저러한 복잡한 심경들로 인해 나쁜 꿈들을 계속 꾸었는지도 몰랐다.


오늘부터라도 다짐을 해야겠다. 잠들기 전 불안한 근심거리들을 침대로 껴안고 들어오지 않을 것. 나 자신을 옭아매고 평가하고 재단하려 들지 않을 것.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느낌으로 '오늘은 무엇을 했나'로 시작된 확인 겸 물음이 결국은 나를 억압하는 행위가 되었다. 일을 하지 않는 요 몇 달간 하루 목표치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보고, 기록하는 것들을 나름 혼자서 꾸려가는 중인데, 그것들에 대한 성실도나 진척도에 관해 잠들기 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책 얼마나 읽었는지, 브런치에 올릴 글들은 썼는지, OO에 올릴 게시물들도 찾았는지 등 나 혼자 관리자가 되어 나의 작업물에 대해 진척도를 평가하고 흡족한 성과가 있더라도 상은 주지 않지만, 벌은 꼭 주고 있는 매운맛 자기검열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하루가 스스로 인정할만큼 흡족한 성과가 없는 날에는 자주 나쁜 꿈을 꾸게 되었다.


꿈들은 매번 다양한데 어제는 대학생 조카애가 일곱 살짜리 꼬마가 되어 우리 집 식탁 위에서 내가 보고 있던 신문을 신나게 가위로 다 오려내고 있었다. 나는 꼭 찾아야 할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조카가 잘라 놓은 신문지 조각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카에게 짜증을 부렸고 꿈속에서 꼭 찾기를 원했던 전화번호는 결국 찾지 못하고 눈을 떠버렸다.


나쁜 꿈은 대개 이렇다.

찾고 싶은 것, 찾아야만 하는 것을 찾지 못하거나, 잃어버린다. 아무리 주위를 뒤지고, 찾아 헤매어도 종내 찾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잠이 깨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 해도 꿈에서 깨면 꿈과 생시가 모호한 지점까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차'하고 놓쳤던 것들이 그렇게나 생생하고 아쉽다. 아마도 내 잠재의식 속에 움츠러 있던 두려움이 이런 꿈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꿈을 꾸고 아침을 맞으면 기분이 결코 좋을 수 없다.


내 침대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 1호가 옥상 산책을 하고 싶다며 나의 기상과 동시에 현관문 앞으로 가서 "애옹! 애옹!"소리를 낸다. 한쪽 앞발로 현관문을 툭툭 치고 건드리기도 한다. 문을 열어달라는 제스처다. 몸은 무겁고, 머리도 맑지 않다. 더군다나 찾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 무엇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나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나의 고양이는 어서 '문을 열라'며 보채는 중이다.


무거운 몸을 끌고 느리게 침대를 빠져나와 애원과 갈증이 뒤섞인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BGM 삼아 컵에 물을 받아 몇 모금을 목 뒤로 넘겨 본다. 현관에서 문이 열리기를 지켜보던 1호가 내쪽으로 다급히 걸어와 내 종아리에 머리를 비비고 관심을 호소한다. 그 사이 2호는 날렵하고 유연한 몸으로 캣타워에서 내려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결국 내가 현관문을 열고 1호가 우리 집 복도 바닥에 제 몸을 던지듯이 누워버린다. 머리와 등 쪽을 바닥에 대고 신나게 몸을 문질러댄다. 어제 목욕을 시켰지만, 그건 나에게만 중요한 사실이다. 오히려 바닥에 몸을 비벼대는 자신이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 할 말을 잃어버린 나를 향해 더욱 격렬한 몸부림으로 콩가루에 묻혀지는 떡처럼 바닥의 먼지를 온몸에 잔뜩 묻혔다.


맙소사...! 제발 그만해 주기를!


1호의 복도 세리머니가 어느 정도 끝나자 나는 서둘러 옥상 출입문을 열어 주고 아이들을 지켜본다. 1호는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아래층 할아버지가 가꾸어 놓은 상추 화분으로 곧장 가서 입사귀를 아작아직 씹어 놓는다. 다행히 할아버지 부부는 식물을 키우는데만 정성을 쏟으시고 수확은 거의 하지 않으신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상추들은 매년 다름없이 시들어 버리게 될 터였다. 2호는 옥상으로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다 열어 놓은 문 밖의 냄새를 킁킁 맡더니 조심스레 깡충하고 문턱을 뛰어넘는다. 따뜻한 혀로 얼굴과 손등을 핥아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검은 고양이.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고, 무슨 이유에서든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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