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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y 07. 2024

990원의 쓸모

 하루 세 잔 정도 꾸준히 마시던 커피양을 줄이게 된 것은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게 된 이후부터이다. 작년 이맘때 부터 이전처럼 커피를 마시면 밤을 샐수도 있다는 것을 몇 일 경험한 뒤로 내 몸에도 '노화'라는 달갑지 않은 변화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커피를 하루 한 잔으로 줄이기 시작했고, 마음을 먹고 이틀에 한 잔 정도로 줄여본 적도 있다.


도서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중 나보다 열살 어렸던 분은 일을 하는 내내 블랙 커피를 수차례 기름을 주유하듯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이용자가 많은 도서관이었으니 카페인의 힘을 빌려쓰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다만, 그렇게 쉬지 않게 블랙 커피와, 자양강장제를 번갈아 마셔도 밤에 별 일 없이 잘 잔다는 건, 그가 확실히 나보다는 젊다는 의미였으므로 부럽기도 했다.


득템한 커피


실업급여로 연명하고 있는 최근 몇 개월 동안은 혼자서 커피전문점을 가는 일은 없었다. 어쩌다 우리집 자매들이나 지인을 만날 때나 몇 번 갔던 것 같다. 오늘도 몇 시간 전 집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지만, 브런치 연재의 압박이 있다보니 단 것도 당기고 별다방을 가야하나 고민을 하던 터였다. 단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요즘은 이렇게 쉽게 단 음식들이 당긴다. 이렇다 보니 나이들어 쉽게 '비만'이 되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만을 떠올렸지만, 여전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달달한 것을 대령하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순간, 기름에 튀겨 자연스레 부풀어 올라 통통하고 완만한 곡선으로 예쁘게 꼬인 꽈배기가 흰 설탕 옷을 입고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그러고 보니, 며칠 전 동네 마트 할인코너에서 산 990원 짜리 커피가 떠올랐다.


나 여기 있어요!


그랬다. 얼마 전 마트에서 '득템'한 커피가 있었던 것이다. 크지도 않은 냉장고를 하루에 열댓번은 열었다 닫았다 했으면서 왜 사놓은 커피가 있다는 생각은 못한걸까. 평소 내용면에서 여러가지로 부족한 우리집 냉장고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렇게 간소하고 검박한 것이 미덕이라 했으니 의도치 않게 그것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던게 된다. 예전에는 이 냉장고가 작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여자둘이 사는 집에 320리터 정도의 냉장고 라면 더 늘리지 않고 잘 사용할 수 있는 크기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가끔 사놓는 커피를 잊어버릴지라도 꽉꽉 채우고살지 않는다면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


할인 코너에서 산 커피 덕에 스벅도 가지 않고, 내리는 비를 집에서 바라보며 브런치를 쓸 수 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그렇다고 990원의 가치 역시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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