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몬 롤 May 01. 2024

도서관에서 일했던 이야기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쓸 말이 없는데 멍하니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자니 누가 나를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해서 키보드를 만지작거렸다. 오늘따라 도서관 자료실이 부산하게 느껴진다. 도서관 이용자들과 근무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이 다른 날에 비해 크고, 잦다. 나는 그 틈에 백팩 앞주머니를 열어 커피 사탕 하나를 까서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인문학 자료실 게시판에는 도서관의 날 기념으로 일주일간 대출권수를 두 배로 늘려주는 이벤트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나도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야간사서로 일을 했었다. 비록, 그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일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전에 해본 적 없던 야간사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은 우선 체력이 받쳐주어야 하는 '육체노동'이 근간인 일이다. 야간사서의 주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배가 업무이다. 책을 정리해서 책의 자리인 서가에 꽂는 일을 말한다. 이용자들이 보고 서가에 놓고 가거나 북트럭에 올려 둔 책들을 정배열한 후 서가에 꽂거나, 대출 후 반납함으로 들어온 책, 상호대차 나간 후 복귀 된 책들도 꽂아야 한다. 


둘째, 데스크 업무이다. 이 업무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이용자들로부터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다. 이용자들이 볼 때마다 앉아 있으니 매일 그렇게 편하게 앉아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겨서 대출 반납만 해주는 줄로 안다. (물론 이 부분도 도서관마다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늘 인원이 많이 부족한 도서관에서만 일을 해봐서 이용자 응대를 하기 위해 서가에서 책을 꽂다 늘 데스크로 달려오던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야간 사서들이 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종종 여성 이용자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여기 취직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알려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떤 면을 보고 지원하고 싶어 졌는지 나 역시 궁금하지만 참는다. 아무튼, 오해를 풀자면 보기보다는 힘든 일이고 육체노동이 80%, 데스크 업무가 40%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120%의 체력을 갈아 부었다는 말. 호호호.


업무 비중은 그러하지만, 업무 중요도는 코라스라는 전산 프로그램을 잘하는 것이 조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얌체들은'이 코라스에는 목숨 걸다시피 열심을 다하는데, 배가 업무에서는 꾀를 부리고 쏙 빠지려고 하는 경우도 본다. 남들 열 권씩 들고 가서 열심히 꽂는 동안 본인은 데스크 주위에 있는 서가에 서너 권 들고 가서 슬쩍 꽂는 척하다가, 데스크로 이용자가 다가오면 이용자를 응대하려고 서둘러 데스크로 들어간다.


배가를 오래 하다 보면, 손목에 무리가 오고 어린이 자료실처럼 낮은 서가가 있는 경우는 하루에 수도 없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게 된다. 일한 지 몇 달만 지나도 다들 비슷한 통증을 호소한다. 무릎도 아프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느라 손목, 손가락 관절도 욱신거리고 아프다. 그러다 보니 다들 배 가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드물지만, 체력이 좋은 경우 배가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료들 중 1%나 될까 한다.



다양한 이용자들이 있는 도서관


제가 일했던 도서관은 아닙니다


짧은 도서관 경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경력에 비해 몇 군데 도서관을 옮겨 다닌 탓에 다양한 이용자분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공공도서관이라는 곳은 차별 없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어린이, 노인, 성인 남녀, 장애인뿐만 아니라 신경증 환자로 보이는 행동부터 눈에 띄는 이용자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도서관 이용수칙은 지키지 않지만 매일 방문하시는 이용자들이 꽤 많다. 수칙은 지키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분들. 책 한 권에 이르는 분량을 전량 복사하겠다고 복사기를 전세 내는 이용자, 도서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니 복사기나, 스캐너 등 이용하는 시설 모두가 무료라고 돈을 낼 수 없다고 하는 이용자, 자료실에서 몰래 과자를 먹는 이용자, 전화 통화를 크게 하는 이용자, 자료실 마감 오분을 남기고 자신의 아이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책을 더 보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부모 등 무수히 많은 불량 이용자들이 있다. 


때로는 최선을 다해 대출 반납등을 도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무례하고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으로 얼어붙게 만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서관을 나오고 싶지만, 나의 가벼운 실수에 너그럽게 기다려 주시고, 급한 분 먼저 도와드리라고 양보해주시는 천사 이용자분들을 보고 위안을 받는다.


민원이 발생할까 두려워서 불량 이용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이런 점을 악용하는 걸 보면 매우 씁쓸하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 근무자들도 그런 지침이 불합리 하지만 비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불량 이용자를 양산시킬 수밖에 없는 방어적인 매뉴얼에 따를 뿐이다.


주말의 어린이 자료실은 지옥 그 어디쯤과 닿아 있다


주말의 어린이 자료실은 도서관 근무자들에게는 지옥 근처 어디쯤으로 느낀다. 소리 지르고 책을 찢는 아이들보다 견디기 힘든 건 아이들을 무질서하게 내버려 두고 핸드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혼 없이 앉아 있는 부모들이다. 아이들과 앉아 책을 같이 고르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공중 매너도 가르쳐 주고 재미있는 체험의 장이었으면 하지만 어른들은 자기 아이의 손을 놓을 망정 핸드폰을 놓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해야 하는 도서관 안에서의 활동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아이들 대부분은 '학습만화'를 찾아서 미친 듯이 도서관 서가를 뒤지지만 먼저 온 친구가 만화책 열 권 이상을 서가에서 모조리 뽑아 자신의 자리 옆에 놓아 독점하며 읽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부모는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다른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만큼만 서가에서 가져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 직원들은 이런 아이들에게도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것 역시 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존재의 이유, 가치... 지금은 다 모호하다.


도서관은 나에게 어떤 곳인가, 질문을 해보자면 이용자로서는 한없이 편안하고 유익한 곳이지만 밥벌이를 하는 수단으로써는 늘 '마지막 선택지'인 것이다. 급여는 너무 짜고(최저시급 기준에서 십 얼마 정도 플러스), 육체노동의 강도는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강도가 센 편이고(도서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감정노동도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이전 01화 이번엔 누구 차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