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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y 23. 2024

자매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

 도무지 맞지가 않다. 과연 이 사람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면 - 학교나 직장 등 다양한 곳에서 타인으로 만났더라면-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싶다. 우리 세 자매는 말한다. 부모님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매로 묶이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싫어할망정 호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을 거라 확신한다고.


형제, 자매, 남매가 있는 집들이 대개 그러하겠지만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진리였다. 우리 세 자매도 태어난 햇수만큼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이 싸우면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언니가 내 옷을 허락도 없이 몰래 훔쳐 입고 나가서, 동생의 수학여행 사진에서 엄마를 졸라 겨우 얻어낸 내 신발이 그 애 발에 신겨 있는 모습을 보았고, 언니 남자친구가 선물해 준 향수를 몰래 뿌리다 들켰으며, 동생과 장난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번져 서로의 학습지를 찢고 육박전을 하면서 자랐다. 할퀴고 발로 차고, 머리카락이 뽑혀 나가는 것도 무서운 부모님의 등장이면 몇 분만에 일사불란하게 정리가 되긴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누가 누구 옷을 몰래 입고 나가는 것은 여사였다. 길에서 내 옷을 입은 자매님을 만나면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내가 너를 죽이러 간다'라고 어느 야구감독의 사인만큼이나 화려하게 제스처를 보내고, 맞은편 자매님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웃음기 가득 담아 보낸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인에서 서로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 오간다. 옷을 훔쳐 입고 밖에서 들킨 범인은 주로 몰래 귀가를 선호하지만, 분노와 배신감으로 그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자매는 결코 먼저 잠들지 못한다. 


우리 셋은 취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옷 사이즈, 신발 사이즈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누가 누구 옷을 쉽게 빌려 입기 좋은 구조가 아니다. 그럼에도 옷이나 신발을 가끔 강탈에 가깝게 도둑맞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 번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가서 옷을 뺏어온 적도 있었다. 마침 나도 그 옷을 입으려고 외출 준비를 하려던 찰나 내 옷을 입고 먼저 나가려던 언니를 맨발로 달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붙잡은 것이었다. 이렇듯 조금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것이 자매들의 치열한 삶인 것이다.


지금은 셋 다 사십 대에 중후반에 나란히 분포하고 있지만, 어릴 적 치열하게 살아왔던 흔적들은 나이테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여전한 신경전은 나이가 들었어도 안심할 수 없다. 다만, 함께 나이를 들어가는 중년의 인생기를 맞이한 세 사람에게 누가 첫째냐 둘째냐 하는 둥의 서열도 흐리멍덩해져 그 빈틈에는 좀 더 잘 버는 사람이 자매들 사이에서 좀 더 '권세'를 누리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사람 여자 둘, 고양이 여자 둘 이렇게 넷이서 같이 산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세 자매 모두 자취를 하게 되었고, 동생과는 합가와 분가를 두어 번 반복하다 사 년 전 몇 가지 이유로 다시 합치게 되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동생이 주말에 자주 우리 집을 방문하여 아이들의 케어를 도와주었기에 고양이들도 이모의 냄새를 낯설어하지 않았고, 교감도 잘되는 편이라 아이들과 사람의 합사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관건은 사람끼리의 합사였다. 처음 몇 달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서로 눈에 거슬리는 점들은 뒷전이라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차츰 새로운 집에 정착하고 출퇴근 길이 익숙해지는 안정기로 접어들자 손가락에 접어 둔 상대방의 거슬리는 점들을 하나 둘 언급하기 시작했다. 


큰 마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입맛, 취향, 생활습관 등에서 오는 '다름'은 잦은 마찰을 불렀다. 텔레비전 채널을 선정하는 것부터 빨래를 접어서 개는 법, 설거지를 하고 나서 그릇을 정리하는 스타일, 욕실 청소를 하는 주기, 재활용품을 정리하는 디테일, 현관에 벗어 놓는 신발 방향 하나까지도 맞는 게 없었다. 문제는 각자 자기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다 언성을 높이게 되는 날이 많았졌다는 것이다. 언쟁의 시작은 상대에게 바라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간에 참고, 쌓아두었던 감정들을 모두 소환해 결국 감정싸움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결국 서로를 겨누고 있는 말들로 인해 내상만 깊어지고 대화다운 대화는 점점 하기가 어려워졌다. 우리 세 자매는 십 대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이제는 육박전은 하지 않는 정도의 분별력이 생겼다는 것이 자랑이나 될까. 그냥 기운이 없어서 다들 못할 뿐이다.


집에 큰 위기가 닥치면 셋이 결집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어느 정도 해결되면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식이 한 명이 아니라서 좋은 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싸울 기회가 있으면 다투고, 대화는 여전히 어렵고, 합리적인 말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게 우리 세 자매들이다.


자매들끼리 친구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래를 가로저을 것이다. 이웃도 친구도 아닌, 그저 가족이고 자매일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 카톡 읽씹을 해도 신경 쓰이지 않고, 나나 그녀들이나 우리가 얼마나 별로인지 속속들이 다 아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저는 6월 한 뼘 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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