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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U Jun 20. 2024

미국에서 만난 내 친구 미셸

나이에 얽매이지 않은 친구를 만나다

미국에서 친구를 사귀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나와 몇 살이 차이 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가 통한다면 우린 얼마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친구를 사귈 때 절대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불문율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얘기 도중에 나이얘기가 나온다든지 자발적으로 자신이 밝히기 전에는 절대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색한 나머지 또는 할 말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나이를 물어보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내 몸에 배어서 나이를 신경 쓰지 않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미국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교류하면서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이민자로 계속 살려고 온 것이 아니라 단기로 잠시 머물다 가는 입장이다 보니 내가 다가가는 것도, 상대방이 가깝게 다가오는 것 둘 다 쉽지 않았다. 특히나 영어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더욱 쉽지 않았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진짜 문제는 마음이지 언어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 중 가장 친구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미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만 해도 미셸과 이렇게 가깝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녀와 나는 교회 구역 모임에서 만났는데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성실히 모임에 참석하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아이들도 이미 장성해서 결혼을 해 나와는 관심사 등의 접점이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근황을 묻는 스몰토크는 항상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천성이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내 딸들이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며 이스터(Easter)에 초대했는데 내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그다음엔 땡스기빙 가족 모임에 초대했다. 나와 다른 해외에서 온 구역 모임 멤버들을 자신의 가족 모임에 초대했다. 미국 가정의 전통 땡스기빙 만찬을 볼 수 있는 기회여서 너무나 고맙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그녀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공원 산책을 같이 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것도 나의 일정에 맞춰서 우리 아파트 앞 공원으로 거의 항상 그녀가 와줬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정기적으로 그녀와 만나 공원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진짜배기 미국 사회를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녀는 한국에 대한 질문도 많이 했다. 나에 대한 배려인지 한국에 진짜 관심이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의 짐작으로는 전자가 아닌가 싶다. ESL 수업 시간에 미국 사회, 문화, 제도에 대해 많이 배우긴 했지만 보다 생활에 밀접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알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내가 특히 좋았던 점은 미국사회를 알 수 있었던 점이 아니라 나의 미국 생활을 그녀와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들과 나의 생활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어땠는지 물어봐주는 그녀에게 내가 겪었던 일, 느꼈던 감정들을 이야기하면서 조언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단지 내 얘기를 할 수 있고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내 삶에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아시안 마켓에도 같이 가고 미셸이 추천해 준 레스토랑에서 저녁도 같이 먹었으며 그녀의 생일파티에까지 초대받았다. 처음엔 직계가족만의 모임인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으나 우리 딸들에게 재밌는 경험이 될 거라며 꼭 와달라는 그녀의 거듭된 제안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다. 결과는 대만족. 그녀는 일본식 레스토랑에서 히바치(불쇼를 곁들인 철판요리)를 대접했다. 일본여행 때 일본 정통 철판 요리를 먹어본 적은 있으나 이곳에서처럼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가미된 쇼는 없었다.


셰프가 요리를 하면서 다양한 불을 이용한 쇼를 선보이고 손님과 적당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음식 받아먹기 등 재밌는 액티비티가 있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저녁식사였다. 내 딸들을 신경 써 주는 미셸에게 너무나 고마움을 느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카약도 같이 타러 갔다. 평일 한낮 호수에는 미셸과 나밖엔 없었다. 넓디넓은 호수에서 유유자적 노를 저으며 우리는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호수의 고요함과 고즈넉함은 미국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그리고 이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귀국준비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그녀와 카페에서 만났다. 6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아침시간이어도 이미 25도 가까이 치솟은 기온 때문에 더 이상 산책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아이들 서머캠프 이야기, 미국 대통령선거, 한국 선거제도 이야기, 미셸 부모님 이야기, 풀장 이야기 등등을 나누고 우리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와의 이 시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시울에 맺힌 눈물을 보는 순간, 내가 정말 마음을 나누고 있던 친구가 맞는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미셸, 너를 만나서, 너로 인해서 나는 정말 외로운 미국생활을 더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 나의 엉터리 영어에도 항상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던 너를 잊지 못할 것 같아. 나도 너처럼 친절을 몸소 베푸는 사람이 돼서 네가 나에게 친구가 되어 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고 싶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너와 나는 영원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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