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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U Jan 01. 2024

미국에서 보낸 2023년

우리 인생엔 생각보다 많은 길이 있다는 걸 깨닫다

내 생애 45년간 이렇게 다이내믹한 한 해가 또 있었을까? 단연코 최고의 한 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에 와서 온전히 4계절을 맞이하며 1년을 보냈다. 시련, 좌절도 많이 맛봤지만 또한 그만큼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3개의 직업을 경험해 본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20년간 한 신문사를 다녔다. 이직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인연이 닿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년의 시간이 흐르게 됐다. 버티는 자가 강한 자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렇게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나에게 신세계를 경험한 듯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미국에서 첫 직업이었던 학교 카페테리아 파트타임은 미국 직업 사회를 경험하고 싶었던 나에게 너무나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근무 날짜와 시간이 아이들 학교 시간과 꼭 맞춰 있으니 아이들이 공휴일이 아니어도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나 일찍 하교하는 날(미국에는 이른 하교 일수가 한국에 비해 꽤 잦은 편이다) 걱정 없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리얼 미국 직장인들과 생활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육체노동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동료들과도 가벼운 스몰토크 외에 깊은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 서툶과 정서 차이, 성격 문제 등으로 어느 수준 이상의 대화로 넘어가지 못하는 듯한 한계를 느꼈다.


그러던 차에 한인 언론사에서 제안이 와서 주간지 기자가 되었다. 20대 때 취재기자가 꿈이었고 미국 현지인뿐만 아니라 한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이라 너무나 기대가 되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든 나에게 더 이상 취재기자라는 직업이 꼭 맞는 신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품은 많이 드는 데 비해 보수가 적었던 것도 한몫했다. 나는 좀 더 아이들을 케어하는 시간도 온전히 확보하면서도 미국 사회를 알아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뉴욕에 있는 한인 라디오 회사에 지원, 뉴욕과 뉴저지 로컬 뉴스를 번역해서 전하는 번역기자가 되었다. 온전한 재택근무라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으면서 영어 공부는 물론 미국 사회까지 알 수 있어 나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일을 해서 외로움을 느낄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언어도 편하고 정서적으로도 맞는 한국인 친구도 좋지만 나는 현지 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그런데 2023년은 나의 그런 바람이 이뤄졌다. 아이들 학교 친구 엄마들과는 친구라고까지는 말하기 뭐지만 그래도 문자메시지로 아이들 얘기를 나누고 있으며 교회에서 만난 친구는 매주 정기적으로 산책을 같이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내가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편하게 생활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도 학교에 베스트 프렌드가 생겨 자주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페이스타임,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주고받으며 학교 생활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가 제일 큰 걱정이었는데 매일 하루 두 번 아빠와 페이스타임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아이들이 아빠가 없는 부분에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나도 미국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여러 경험을 해보며 성장했지만 남편 또한 가족이 없는 주말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며 공부해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 이보다 뿌듯한 일이 어디 있으랴.


2024년에도 우리 가족에겐 꿈이 있다. 먼저 두 갈래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에 남느냐, 한국에 돌아가느냐. 미국에 오는 길을 선택했던 2022년도처럼 또 한 번 중대한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우리 가족은 각자의 위치에서 한층 더 성숙해지고 발전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나뚜리 가족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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