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주인공은 내 아이들인데 왜 내가 더 떨리는지
작년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은 쌍둥이 두 딸의 생일은 정말로 너무나 조촐하게 보냈다. 우리 세 식구가 케이크 하나 준비해서 축하했던 게 다였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라고 대단하게 생일날을 보낸 것은 절대 아니지만 생일을 알릴 친한 친구 하나 없이 더구나 아빠까지 없는 생일날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그때 내년 생일날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축하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직접 호스트가 되어 생일파티를 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한국인 ESL친구가 자기 딸 생일파티를 키즈카페와 비슷한 개념인 '어반에어(Urban Air)'에서 예약했다며 지금 할인이벤트를 진행 중이니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링크를 보내줬다. 최대인원 10명에 450달러 정도 금액이었는데 처음엔 후덜덜 한 금액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쌍둥이라 두 명이고 또 집에서 여는 파티는 꿈도 못 꾸는데(집도 좁고 애들 놀거리도 감당 안되고) 이만한 장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100달러 할인 이벤트라 피자와 치킨, 음료수 등을 커버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거의 6개월 전에 예약을 해놓고 드디어 생일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때, 서로 다른 반이 된 쌍둥이에게 각각 친한 친구 4명씩을 선택하라고 해서 초대장을 돌렸다.(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반 아이들 모두에게 초대장을 돌리는 것이 의례인데 3학년쯤부터는 좀 컸다고 친한 친구 몇 명씩만 초대하는 문화였다) 초대장에 내 전화번호를 적고 참석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나하나 그 친구의 부모와 직접 연락을 취해야만 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평소 아는 사이도 아니니 자기소개부터 해야 하고 상당히 귀찮고 신경 쓰이는 절차였다)
그리고 1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문자메시지로 다시 리마인드 시켜주고 생일파티 답례품(goodie bag)도 정성스레 준비하면 보통은 끝이다. 그런데 이 카페 예약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었다.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로 한 친구 부모에게 카페 링크를 보내줘서 카페에 오기 전에 웨이버(권리포기)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다. 미국은 소송의 나라이다 보니 사인서류를 요구하는 일을 적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한국에서라면 그날 맛있는 거 사 먹고 생일선물 사주면 끝인데 미국에 와서 또 이런 고생을 하게 되다니. 하지만 사실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경험이긴 했다. 왠지 진정한 미국맘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중 하나라고나 할까. 그렇게 생일파티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당일이 됐다. 오늘 아이들 친구 부모들과 어색하지 않게 인사 잘 나누고 애들 잘 케어해서 생일파티 2시간 동안 무탈하게 잘 보낼 수 있을지 살짝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자초한 일, 한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10여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생일테이블 점검도 하고 물품도 가지런히 배치하고 손님들을 기다렸다. 엄마와 온 친구, 아빠와 온 친구, 언니와 같이 온 친구 등 모두 6명의 친구가 와주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중국인 엄마와 아빠(다른 가정)만 2시간을 같이 있어주었다. 그 덕분에 나도 여러 얘기를 나누며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고 헤어질 때는 오히려 테이블 정리하고 짐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답례품 주는 것도 까먹었다.(월요일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나눠줬다)
사실 생일파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의 베스트 프렌드 두 친구만 따로 우리 집에서 슬립오버(1박)를 했다. 그렇게 생일파티 1박 2일을 보내고 난 후 난 녹초가 돼 있었다. 내 생일도 아닌데 생일파티 두 번만 했다간 골병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고 게다가 보호자가 나 혼자이다 보니 아이들 케어에 계속 신경 써야 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뭔가 큰 산을 하나 넘은 듯한 안도감과 후련함도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미국에서의 아이들 생일파티 열어주기는 나의 미국 생활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1년여 사이에 친한 친구들을 사귀어서 진심으로 생일축하를 받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지금처럼 어디에서 살건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쭉 자라주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나의 피곤은 소리 없이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