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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U Jun 29. 2024

미국에서 겪은 놀라운 일 세 가지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기에 더 벅찬 감동을 느끼다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놀라운 일들은 꼭 미국이어서 가능했던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미국이라서 더 경험할 가능성이 높았고 감동 또한 더 컸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이런 일들을 겪은 것만으로도 참 살아볼 만한 인생이었고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 겪은 일은 공원에서였다. 미국에 오자마자 거의 2년 동안 일주일에 세네 번씩 공원에 나가 꾸준히 산책을 했는데 거의 2년이 다 되어 갈 때쯤이었다. 나는 항상 평일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산책을 했는데 그날은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이 친구집에 슬립오버(1박)를 하러 가서 충동적으로 산책을 나갔다. 평일 오전에는 혼자 조깅을 하거나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는(한국이랑 비슷) 그룹이 많았다. 하지만 주말에는 커플이나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 속에서 혼자 산책을 하려니 조금 더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러던 중 마주 오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한 손에 프리즈비를 들고 있던 그는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몇 초간은 조금 당황하면서 '뭐지? 여기도 다단계? 잡상인?'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 스쳤지만 아주 짧은 순간에도 나는 한번 이런 제안에 응해보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둘이서 두세 번 프리즈비 캐치를 하다가 아저씨가 또다시 혼자 산책하는 여학생을 초대하며 일면식도 없는 우리 세 사람은 어색하면서도 재밌는 프리즈비를 약 30분 동안 함께 했다. 마지막에 합류한 여학생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왔는데 영어가 좀 많이 서툴렀다. 하지만 놀이에 영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학생이 집에 가야 한다고 먼저 떠났고 나도 아저씨와 그제야 통성명을 했다. 아저씨의 이름은 제임스(James). 이런저런 스몰토크 후 내가 알아들은 선에선 이곳 커뮤니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공원에서 보자며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정말 너무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낯선 사람들과 놀 수 있는 거구나. 이런 게 미국이구나.


두 번째 역시 미국 생활 1년 여가 지났을 때였다. 나는 영어 원서 읽기에 도전했다. 아무래도 재미가 있어야 완독이 가능할 것 같아서 코스트코 할인 도서코너에서 신중히 로맨스 책을 골랐다. 하지만 아는 작가도, 아는 소설도 찾아볼 수 없어 작품을 고르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과 책 표지에 끌려 선택한 책은 'It ends with us'. 사랑과 성폭력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가벼운 로맨스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깊이 있으면서도 몰입감이 좋아 빠르게 완독해 버렸다. 특히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아 마지막 부분에서는 거의 매번 눈물을 흘리면서 책을 읽었다. 이런 놀라운 작품이 나의 첫 원서 도전이었던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인데 더 놀라운 일이 2~3개월 후에 벌어졌다.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신작 영화 예고편 썸네일을 보게 됐는데 제목이 'It ends with us'였다. 설마 하면서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그 작품이 맞았고 심지어 주인공들마저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었다. 여자주인공은 '가십걸'에서 세레나 역으로 처음 알게 된 블레이크 라이블리였고, 남자주인공은 미국에 와서 처음 본 파라마운트 플러스 드라마 '1923'에서 스펜서 역으로 나온 브랜든 스클레나였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영화화했는데 심지어 주인공 배우들마저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 맞네. 푸하하.


마지막은 편견에서 감동을 받은 일이다. 앞선 챕터에서 늦은 퇴거 통보로 아파트 렌트비 한 달 치를 더 내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실수한 일을 깨끗이 인정하고 하루빨리 잊기로 했다.(맘먹은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되돌리기 위한 어떤 노력(하소연)도  다 부질없는 일임을 알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정산을 위해 관리사무소에 갔는데 직원은 내 임대시트를 체크하더니 한 달 치 임대료를 더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더니 직원은 내가 전에 사인한 서류를 보여줬는데 거기엔 놀랍게도 퇴거 신청을 한 날짜가 수정돼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변명이나 사정이 안 통하는 미국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날 위해 이런 불편한(?) 일을 해주다니...


미시(Missy)라는 이름의 직원은 믿기지 않는 감동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따뜻이 안아주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떠나는 나에는 이렇게 큰 감동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미국에서의 모든 게 다 좋았는데 마지막에 나의 실수로 인해 2년간의 미국생활에 잊히지 않는 단 하나의 큰 오점이 남겨지려던 그 순간이, 이제는 죽기 전 미국에 돌아와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이 사회는 그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내 실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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