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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Apr 27. 2024

10화 겨울에도 심심하지 않아!

낡은 단독 주택에서 겨울을 살아내는 법

낡은 단독주택에서 겨울을 살아 내는 법


장롱을 비우고 장롱 문은 반드시 열어 두라그렇지 않으면 곰팡이 천국을 만날 것이다

 오래 방치된 낡은 주택에서의 겨울은 사실 참 힘들었다. 단열과 결로 문제로 장롱 안은 물이 줄줄 흘렀다. 이런 사태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별로 똑똑하지 못한 나는 결국 장롱 안에서 축축하게 젖어 곰팡이의 풍요로운 서식지가 된 이불을 발견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겨울 생활 팁이다.  곰팡이 핀 이불을 버리고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이불은 깨끗하게 빨아서 모두 안동에 있는 동생 집으로 피난시켰고 하루 종일 장롱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았다. 결과를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얻게 된 생활의 지혜들이다. 


밤새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 한다!

 수도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밤새도록 주방 수도꼭지에 물이 졸졸 흐르도록 해 놓고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수도 동파를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지혜로운 조상들의 겨울 생활 팁이다.      


두툼한 내복은 겨울의 필수 아이템!

 내복은 겨울 한기로부터 맞서 싸울 수 있는 겨울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면서 몇 년 동안 입지 않았던 내복이었다. 남편과 나의 내복을 새로 사고 아이들의 내복은 더 두툼한 것으로 준비했다. 가족들에게 내복을 든든히 챙겨 입혀야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해결되지 않던 겨울 한기에 맞서 가족을 지킬 수 있었다.


욕실 유리창에 매달린 얼음 판때기가 작아진다면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욕실 유리창에는 남편 등짝만 한 얼음 판때기가 매달려 있었다. 낮이라고 녹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낮이 되면 살짝 작아질 뿐. 그러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더 거대해졌다. 단열이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 밤이면 실내외의 기온 차로 욕실 벽엔 물이 줄줄 흘렀다. 유리창은 외기에 직접 닿아 있으니 맺힌 이슬이 그대로 얼어 매일매일 점점 더 거대한 얼음으로 자라났다. 아침마다 마주하던 욕실 유리창의 얼음 판때기가 작아지고 있다면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최고의 겨울 생활 꿀팁은 역시 눈놀이!


 이왕에 살게 된 단독 주택!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제대로 즐겨야 한다. 대구보다 더 혹독한 겨울을 살아 내야 했지만, 따뜻한 대구와 따뜻한 아파트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던 함박눈이 펑펑 내린 것이다. 나의 머릿속은 바빠졌다. 이 눈으로 뭘 하고 놀지? 이 귀한 눈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넓은 마당 한가득 쌓여 있는 눈, 하얗게 변해 버린 눈세상은 정말이지 우리만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 눈으로 뭘 하고 놀까? 대구에서 만났던 작은 양의 눈으로 겨우 만들었던 꼬마 눈사람 만들기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생각해 낸 첫 번째 눈놀이는 눈썰매장 만들기였다.

 마당에서, 집 앞 3층 건물에 가려서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 눈을 쌓기 시작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큼지막한 대야를 한 개씩 챙겨 들고 열심히 눈을 모았다. 그러다가 항상 창의적인 생각이 반짝거리는 딸이 빨래할 때 사용하던 아기 욕조를 들고 와서 눈을 퍼담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붙었다. 마당의 평상 한쪽에 눈을 쏟아서 쌓았다. 어느 정도의 규모의 눈썰매장이 만들어지자 아기 욕조를 타고 눈썰매를 탔다. 나는 조금 더 욕심이 났다. 이왕에 만든 눈썰매장. 언제 녹아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탈 수 있으려면 눈썰매가 필요했다. 눈썰매장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눈썰매를 검색하여 당장 주문했다. 그렇게 아이도 어른도 신이 나서 눈썰매장을 만들고 눈썰매를 타며 겨울을 제대로 즐겼다.      







 이번에는 눈으로 이글루 만들기!


 눈썰매는 녹지 않고 며칠씩이나 우리가 신나게 놀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며칠 뒤, 또다시 내린 함박눈! 이번에는 이글루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눈 벽돌을 만들어야 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반찬통에 눈을 꼭꼭 눌러 담아 눈 벽돌을 찍어 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눈 벽돌을 만들고 택배 놀이를 하며 눈 벽돌을 배달했다. 그렇게 만든 눈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이글루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글루는 역시 건축이었다. 중심과 균형을 맞추는 게 상당히 어려워서 교과서에 나오는 예쁜 모습의 이글루는 완성되지 못했다. 비록 모양은 이상했지만, 눈 벽돌을 만들어 쌓으면서 우리 가족은 즐거운 추억들도 가득 쌓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아!


 단독 주택에서 만난 추운 겨울은 우리를 몹시 당황시켰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했다. 어른인 나도 그때의 일이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십여 년이 흐른 뒤, 내가 영주로 다시 돌아와 꿈꾸던 집을 짓고  살던 때, 그 사이 훌쩍 커버린 딸이, 함박눈을 보고 그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갑자기 김치통을 달라더니 눈벽돌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남편과 나, 그리고 그 사이 태어난 셋째까지 모두 합심하여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이글루를 만들었었다. 고 3이 된 딸은 사실 웬만한 일에는 마당에 나오지 않았는데, 마당에 나와 이글루를 만들고 눈사람을 만들고 사진을 찍으며 하루종일 놀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그 옛날의 낡은 단독 주택에게 감사했다. 이렇게 눈이 오면 소환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서 참으로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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