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보면 반하는 맛, 카오 소이 카이
“언니 언제까지 기다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곧 우리 차례일 것 같다!!”
아까부터 서영이 눈치를 보는 중이다. 내가 동생 눈치를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지금 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상황은 이렇다. 치앙마이에서 유명한 맛집. 카오 소이 매사이. 저번에 혼자 왔을 때 먹어보곤 반해서 이번에 서영이를 꼭 데리고 와서 맛을 보여줘야지 생각했던 곳이다.
지도도 보지 않고, 내가 자주 왔던 곳이라며 자신 있게 길을 찾아왔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멀리서부터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 것. 분명 내가 왔을 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여기 진짜 맛집이라며 서영이한테 군것질도 못 하게 하고 왔는데! 지금 줄로 봐선 30분은 기다려야 할 판이다.
물론 맛집이니 기다리는 걸 예상 못 한 바는 아니다. 근데 지금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저번에 왔을 때는 분명 사람이 없었는데.. 이 정도로 차이 나는 건 반칙이지. 그 사이에 더 유명해진 건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시 머리를 굴려보니 지금은 1월. 다시 말해 성수기다. 내가 왔을 때는 한창 더울 4월이라 비수기였던 걸 생각 못 한 것이다. 어쩌겠나. 내 계획의 한계다. 혼자 왔다면 무작정 기다리거나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을 텐데, 서영이에게 하도 칭찬을 해둔 터라, 맛을 보여주긴 해야 한다.
“너무 덥다”
“맞제 좀 있다 들어가서 시원한 콜라도 시키자”
서영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 쓰이는 지금. 기다리는 것에만 집중하면 서영이는 계속 짜증이 날 게 뻔하다. 그렇다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지.
“사진 찍어줄까. 맛집인데 그래도 앞에서 사진 찍어야 하지 않겠나”
“알았음”
‘휴 다행이다’를 속으로 외치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서영이 사진을 찍는다.
“오 그렇지 포즈 좋음. 모델해도 될 듯”
칭찬을 남발하며 사진을 찍어주니, 서영이의 기분이 한층 누그러졌다. 서영이와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데 드디어 종업원이 우리를 부른다. 나이스! 사진 찍어주길 잘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가는데? 기분 좋게 종업원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힘차게 카오 소이 카이 두 개와 콜라를 주문한다. 카오 소이 카이는 코코넛 밀크와 카레가 국물로 되어있는 닭다리가 들어가 있는 면요리다. 이게 그렇게 맛있어?라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YES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편식쟁이. 초딩입맛. 모두 나를 가리키는 수식어로. 이 나이 먹고 편식을 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야채와 낯선 음식은 도저히 먹으래야 먹을 수가 없다. 몇 입 먹기만 해도 헛구역질을 해대는 탓이다.
그런 내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음식이 바로 카오 소이 카이다. 일단 기본 재료부터 고기와 카레. 솔직히 고기를 싫어하는 편식쟁이는 없을 거다. 고기에 더해 카레까지 좋아한다면 아마도 치앙마이에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현지 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바삭하게 튀긴 면까지.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이 맛. 한 달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도 현지 음식을 잘 못 먹는 탓에 치킨과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만 먹던 나였는데, 그런 나를 신세계로 이끈 음식! 카오 소이 카이!
‘일단 먹어봐’를 외치며 얼른 서영이가 한술 뜨도록 만든다. 그렇게 서영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입만 쳐다보면서 기다리는데,
“오 맛있음”
눈이 땡그래지며 딱 한 마디만 하는 내 동생. 그럼 그렇지,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근데 뭔가 서영이의 표현이 부족하다. 내가 기대했던 표현은 이게 아닌데, 뭔가 조금 더 극적이 표현이 필요하다.
“아니, 자세히 말해봐. 어떤데? 니 취향이야?”
“엉 맛있다. 먹을만한데?”
먹을만한데..? 먹을만한데에에에..? 아니 맛있어서 극찬이 나와야 하는데 ‘먹을 만한데’가 말이야 방귀야? 설마 맛이 없는 건가? 서영이의 무미건조한 표현이 불안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맛이 없나 싶어 서영이에게 계속 되묻는다. 그러니 서영이가 나를 딱 쳐다보며 하는 말.
“맛있다고”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다. 이제 그만 물어보라는 표현이 가득 담긴 한마디. ‘그럼 니가 처음부터 맛있다고 확실히 티를 내면 되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이내 삼킨다. 생각지도 못하게 땡볕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서 먹는 건데, 이제 와서 간신히 좋아진 분위기를 망칠 순 없다. 말없이 닭다리만 뜯는다.
꼬치꼬치 캐묻던 내가 조용해서 이상한지, 서영이가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말한다.
“언니 진짜 맛있다”
“나는 근데 니가 엄청 맛있다고 해주면 좋겠다. 괜히 눈치 보임”
“내 표현이 원래 미지근하다이가. 근데 진짜 맛있음. 섭섭해하지 마라”
다시 서영이가 맛있다고 표현해 주니 서운한 마음이 금세 사라진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렇다. 서영이와 나는 일단 표현방식부터 다르다. 나는 무언가 좋다고 느끼면 세상에 있는 난리란 난리는 다 떠는 호들갑쟁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에게 ‘왜 저렇게 난리야’라는 소리도 듣곤 하는 반면, 서영이는 모든 표현이 적당하다. 좋은데? 괜찮은데? 재밌어. 딱 그 정도의 표현만 보인다.
그래, 그냥 성향이 다른 것뿐인데. 나는 서영이가 나처럼 표현을 안 하니, 괜히 서영이가 음식이 맛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자신 있게 데리고 온 맛집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줄을 오래 기다린 것부터 해서, 내심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같이 온 여행이란 이렇다. 혼자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을 신경 써야 한다. 서영이의 기분, 컨디션, 입맛, 취향까지. 내가 데리고 오고 싶어서 데리고 온 거지만, 가끔은 서영이가 정말 좋은지, 맛있는지, 재밌는지 계속 체크해야 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다. 그런 나에게 정말 맛있다고 격한 리액션만 해주면 될 일인데. 서영이가 그걸 안 해주니 나는 알게 모르게 섭섭했던 것.
비슷한데 다르다. 다른데 비슷하다. 서영이와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생각 중 하나. 그리고 치앙마이에서의 모든 우리의 걸음은, 매번 그걸 느끼게 만든다. 한국에서, 현실에서, 일상에서 이런 생각을 느꼈다면 ‘그래 그럼 그렇지. 니랑 내가 통할 일이 있나’라며 마음의 문을 닫고 얘기할 생각도 안 했을 테다. 그런데 여행이란 이 행위가. 치앙마이라는 이 공간이, 내가 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나의 마음을 조금씩 얘기하게 만든다. 멀리까지 와서 서영이와 싸울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일까.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결코 우리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카오 소이 카이 국물을 싸악 비워내며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