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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22. 2022

태국에서 아리랑을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여행이 주는 선물

여행을 떠나오면 나는 유독 걸음이 느려진다. 성격이 급해 빨리빨리를 외치던 나는 이곳에 없다. 앞만 보고 직진하거나, 휴대폰만 응시한 채 걸어가는 나도 이곳엔 없다. 느리게 걸으며 길가의 모든 것에 눈길을 보내는 나만이 이곳에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느려진 내 걸음마저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들이 있다. 그 무언가의 종류는 다양한데, 길고양이에서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이거나, 때로는 고소한 냄새가 그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내 발걸음을 붙잡는 무언가들은 생명의 유무도 가리지 않고 형체의 유무도 가리지 않은 채, 작고 사소하다는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살며시 내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걸음을 멈춘 채,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백발의 할아버지.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서서 할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내가 걸음을 멈춘 이유는 오직 할아버지의 표정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저 웃음. 사소한 이유지만, 나까지도 기분 좋아지는 표정에,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을 계속 맞추며 바라보는 내가 궁금한지, 어디에서 왔냐 묻는 할아버지.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

“나 한국 알아. 아리랑 부를 수 있어.”

“아리랑이요? 불러주실 수 있어요?”

“그럼”

할아버지의 아리랑


한국인이라는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한다. 내가 언제 아리랑을 이렇게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있었던가. 나보다 아리랑의 가사를 잘 아는 할아버지. 중간중간 태국어가 섞이긴 했지만,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애절하게 부르는 덕에 나까지 애절해진다. 진심을 가득 담아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괜히 울컥한다. 천천히 걷지 않았다면 이렇게 노래에 진심을 다하는 할아버지를 마주칠 일은 없었겠지.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사소한 이유들은, 결국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저 길고양이가 귀여워서 걸음을 멈춘 나는 웃고 있고, 소품이 예뻐서 걸음을 멈춘 나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소품을 손에 쥐고 있다. 할아버지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걸음을 멈춘 나는 그 순간부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사소하고 하찮은 이유들은 내가 걸음을 멈추고 마주한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가 된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인해 웃는다. 조그마한 것에 위로를 받는다. 여행이 주는 나의 사소하고도 귀한 행복이다.


내가 발걸음을 재촉해서 걸어갔다면 할아버지를 만날  있었을까. 내가 휴대폰만 응시한  걸어갔다면 태국어가 섞인 아리랑을 들을  있었을까. 아마도 살면서 마주할 일은 없었겠지.


여행이란 행위는  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결국  많은 것들을 만나게 한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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