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김밥은 단순했다. 지금과 달리, 분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김밥 메뉴로는, 대부분 그냥 ‘김밥’ 단일 메뉴였다. 시금치를 넣느냐 오이를 넣느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같은 재료로 ‘김밥’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반면, 현재의 김밥 메뉴는 무한대로 확장되는 듯 보인다. 90년대 후반부터 김밥 전문점이 대중화되면서 참치 김밥, 치즈 김밥, 소고기 김밥, 샐러드 김밥 등이 기본 메뉴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더욱 다양한 재료의 조합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김밥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필자의 집 가까운 곳에 있는 김밥 전문점에는 김밥의 메뉴가 50가지가 넘는다. 견과류멸치 김밥, 청양고추오이지 김밥, 크림치즈 아보카도 김밥, △△□□○○김밥 등등..
김밥과 같이, 과거의 단일했던 상품과 서비스가 더욱 다양화되고 세분화된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보다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가 필요하고, 기업이나 판매자는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김밥처럼 상품과 서비스가 다양화되고 세분화되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 자신, ‘나’ 자신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곤 한다. 부모님, 친구, 연인, 배우자와 있을 때 각각 나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특정 모임의 성격과 구성원에 따라 더욱 새로운 나를 보여주곤 한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부캐를 만들기도 하고, 현실의 나와 전혀 다른 아바타 등을 활용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김밥이 다양한 메뉴로 다양한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키려는 것처럼, 우리도 다양한 캐릭터로 다양한 세상에 적응하고, 복잡한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양함이 지나친다면, 오히려 나를 잃어 갈지도 모른다. 너무 새로움만 고집하다 보면, 그것은 더 이상 김밥이 아니고, 내가 아니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본질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나의 본질을 지키며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부캐와 새로움이 없더라도, 어떤 자리에서든 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김밥 역시 아무리 단순한 김밥이라도, 그 본질을 지키고 사랑과 애정을 쏟은 김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특별할 수 있다. 90년대 어린 시절, 소풍 등의 특별한 날에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주신 김밥이 바로 그러했다. 사 먹는 김밥보다 건강했고, 소풍의 설렘이 더해지며 그 맛도 배가 되었던 기억. 흐릿해졌지만 아직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