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영업

by 이기한

“영업을 즐겨라.”

영업을 하면서 참 많이 들었던 말이고 동시에 많이 해 줬던 말이다. 사실 아이러니한 말이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말이다. 계속해서 영업은 힘들고 쓰리고 아픈 거라고 말해 놓고 갑자기 즐기라니, 이건 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 말같지 않은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된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보

다 더 이길 수 없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이라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말했다. 내가 영업 현장에서 보고 경험했던 바도 똑같다.

고층 빌딩에서 근무해 본 직원들은 다 알듯 구두를 정기적으로 닦는 직원들이 참 많다. 내가 근무했던 여의도의 모 건물에도 그 건물에서만 몇 년째 구두를 닦는 사장님이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건물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분이 바로 그 사장님일 것이다. 어눌한 말투지만 항상 미소를 띤 사장님의 모습이 언제나 좋은

아침을 열어 주셨다. 매일 아침 각 층마다 다니면서 고객들의 구두를 수거하고 다시 가져다주었다. 막상 쉽고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건물의 각 층마다 고객이 한 사무실에 최소 이삼십 명이 있고, 전체 13층이니 최소 200~300명 고객의 신발을 외우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한번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의 신발을 외우냐고 여쭤보았다. 사장님은 초등학교 학력밖에 안 되지만 구두의 생김새와 그 주인의 얼굴을 매치하는 동물적 감각이 있다고 했다. 지금도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의 발끝부터 얼굴까지 외우는 감각이 남보다 뛰어난 것 같다고 말하며 머쓱해하셨다. 일이 고통스러우면 즐겁게 할 수 없

듯이 이 사장님에게는 지금의 일이 즐거운 일상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장님 가게에서 구두를 닦으면서 사장님의 인생 역정을 들었다. 어릴 때 먼 시골에서 상경해 중국집 배달 일부터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평생 이 조그만 구둣방을 해 온 자신이 그리 특별한 것 같

지는 않다고 부끄러워하셨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서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신이 닦는 구두가 다른 가게와는 차별화한 기술로 닦기에 이 지역에서는 최고라고 했다. 그 차별화된 기술이 뭐냐고 물어보니 자신만의 ‘물광’ 기술이란다. 보통 구두를 닦으면 구둣기름이 잘 붙게 불을 쬐어서 액체 구둣기름이 오랫동안 구두에 안착되게 한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거기에 물로 광을 한 층 더 냄으로써 일종의 광택을 입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무슨 특별한 비법인 양 흥분하면서 재밌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 일을 즐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묻은 구두약이 채 벗겨지기도 전에 계속되는 광칠 때문에 시커멓게 된 손으로 사모님이 싸 주셨다는 도시락을 꺼내면서 “이렇게 늦은 점심이지만 이 시간이 제일 좋다”고 말하며 사장님은 해맑은 웃

음을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계산적이고 성공 지향적으로 살아온 나 자신을 돌아봤다. 차 한 대를 팔기 위해 성심을 다하고 때로는 손해 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내 모습, 몇 날 며칠을 노심초사하면서 성사되기를 바라 왔던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몇 날 밤을 자책했던 수많은 시간이 떠올랐다.

반드시 즐겁고 꼭 남이 알아줄 만큼 화려해야만 즐기는 것일까. 소소하지만 자신의 루틴대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뤄 나가는 과정, 실패도 성공도 나에게 좋은 영양제라는 생각, 이런 모든 것이 일상의 연속같이 느껴지면 그게 바로 즐기는 영업이고 좋은 영업이 아닐까. 오늘도 사장님 가게로 구두를 닦으러 가면서 여러모로 배우게 된다.

이전 15화실패 없는 영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