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하여
"작년 이맘 때 그 날카롭게 썼던 감성이 지금 없어진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은 늘 고통을 동반하지만 유독 최근 들어 고독과 고통이 동시에 날 난감한 지경으로 수시로 빠뜨리는 통에 매일 정신이 너덜거린 채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다. 하루 종일 노트북앞에서 쩔쩔 매지만 어떤 날은 후루룩 내가 아닌 손가락이 마구 언어를 쏟아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 쏟아낸 글들을 죄다 지우면서 혼자 신경질과 짜증의 꼭대기에 올랐다가 또 어떤 날은 끙끙대며 에너지만 소모된 채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날이 계속 반복된다.
내 글이 세상을 구할 것도 아닌데 왜 이 난리야? 하며 나에게 욕한바가지 해주기도 하고
아니지, 내가 글로 먹고 살려는데 세상살기가 그리 쉬워? 돈버는 게 쉬워? 프로가 되는 길이 쉬워? 하며 내게 현타를 날리기도 하고
그래, 넌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쌓은 양이 얼만데 지금 네 글때문이 아니라 글로 남은 인생 먹고 살아보자 맘먹은 것에 용기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며 내 속을 헤집어가며 타이르기도 한다.
집에 묵은지가 떨어져서 김치찌개를 한동안 못 먹었다고 투덜댔던 것을 기억했는지 가까운 지인이 동네에서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하자고 불러내 '왠 호강이냐?'싶어 냉큼 노트북을 접고 뛰쳐나가 소주 한잔 기울이며 아주아주, 아주아주아주 이기적으로 나는 '내 글'에 대한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데
'날카로운 감성이 없어져서 속상하다'는 내 말에 상대는
'그 때는 벽돌 한장한장 구운 것이었다. 작년에 당신이 쓴 소고들. 얼마나 날카롭냐? 그 소고들이 하나씩 모였으니 이제는 집을 지을 때다. 그 날카로움은 소고속에 그대로 담겨 지금 쓰는 책 속에 담길거다.'고 한다.
아..... 감동.....
벽돌이 제대로 잘 구워졌으니 그것으로 만든 집도 제대로일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 소주도 마셨겠다. 울컥울컥 눈물까지 쏟아낼 뻔했는데 술마시다 우는 건 진짜 내가 싫어하는 짓이라 괜시리 아무렇지 않은 척, 고맙다 그리 말해줘서 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는 들켰고 위로받았고 감동받았다. 내 괴로운 심정이 그리 들켜버렸는데 위로받는 걸 무지 싫어하는 나의 속내까지 간파해서 정리를 딱! 해주는 통에 순식간에 내 심정은 머리로, 머리는 이해됐다는 신호로 느낌을 보내왔다.
나름의 '날카로웠던' 글들에 왜 그 때 나는 '소고'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 싶기도 하고 글도 자기 그릇을 정확히 알고 내 손가락을 움직였나? 신기하고 우스웠다. 그 글들을 모으고 다시 재정리, 조립, 연결지어 '이제는 책을 출간할까?' 맘먹은지 몇달째다.
나이 40이 되면 책을 내야지. 라고 10여년 전 그리 결심하고 책을 냈다.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누가 볼까 두려운 책이다. 엉망이다. 그래도 멋모르던 그 때 매년 책이든 논문이든 꼭 1편씩은 써야지. 라고 맘먹은 것을 지금 10년이 지나도록 지키고 있다. 책8권, 논문은 훨씬 많이. 그렇게 지나오다가 2019년, 그러니까 새벽독서를 시작하게 했던, 정신과 감정이 완전히 바닥난 그 시점부터 '출간'이라는 것은 내게 너무 먼 일같이 느껴졌고 내 자격이 그리 갖춰지지 않았다는 자기비하(어쩌면 직시)에 나는 주변의 권유와 출판사의 제의에도 고개를 돌려 왔었는데 5년간의 지독한 새벽독서와 더 지독했던 2년간의 브런치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지키면서 올해 들어 '출간'을 할까? 하는 느낌을 그냥 따르기로 맘 먹은 것이다.
그런데.. 나란 사람이 늘 그렇듯 자꾸만 날 세워두고 검수한다. 날카롭지 않다고 요 며칠 신경이 곤두세워져서 날 채근하며 내게 한걸음도 걷지 못하게 날 세워두고 계속 검수검수검수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좀 걷자... 외적인 내가 사정해도 '안돼. 좀 더' 라며 내면의 나는 내 걸음을 자꾸만 멈춰 세운다.
그래도 네 이빨이 빠지나 내 살점이 뜯기나 한번 해보자 싶은 내 안 깊숙하게 숨겨둔 비장한 의지의 무기로 나는 주구장창, 진짜 주구장창 노트북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는 있다. 이럴 때 '정신의 환기'를 좀 시켜줘야 하나 싶어 뭘 하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등등 뭐든 시도해보려 해도 내겐 그런 게 없다. 참 이상하다. 물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게 없다기보다 그러면 맘이 불편하니 차라리 멍때리더라도 노트북 앞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일테다.
나는 의지가 강하거나 끈기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편한대로 행동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목표한 삶이 날 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내 삶에, 내 목표에 아부하고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난 알아버렸다.
목표는 내 안에서 창조된 것이지만 자체동력으로 내달린다는 것을,
가다가 내가 자격이 갖춰지지 않으면 다른 주체자를 찾아서 손잡아버리는 아주 야비한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 안에서 튀어나온 나의 꿈, 나의 목표에도 애걸하고 아첨을 떨며 어떻게든 붙어있으려 애쓰고 있다.
작년, 내게서 끊임없이 튀어나왔던 글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도대체 뭘 증명하려고 나를 그리 닥달해가며 미친듯이 내게서 탈출했던 것일까?
그런데 지금은 왜 내게서 탈출을 시도하는 글들이 다들 힘이 없고 한탄스러운 모양새만 지니고 있는걸까?
아! 혹시....
작은 내 안에서 나와야 할 작은 놈들은 다 나오고 더 큰 놈이 나오려는데
내가 작아서 나를 고통스럽게 찢어 늘리는 중인가?
그렇게라도 증명해내야만 하는 뭔가가 있는 것인가?
내 글이 목표한 곳으로 내리 달리려니 더 큰 내가 필요하단 말인가?
책을 더 읽으면 되나?
더 고립과 고독으로 빠져야 하나?
내 정신속 사고들이 좀 더 쫀득거리고 단단하게 연결되어야 하나?
내 가슴 속 감성들이 더 유들거리고 더 순수하게 맑아져야 하나?
갑자기 우리 아이들 낳을 때가 생각난다. 10달 뒤 태어날 것을 알고서 10달을 보냈다. 10달 내내 힘든 날도 지친 날도 많았지만 좋은 날도 많았다. 그런데 막바지 진통이 오니까 이건 뭐....몇 번 기절을 하고는 아이가 태어났다. 참고로 난 두녀석 모두 자연분만을 했다.
글도 그런 것인가? 브런치에 매일 새벽 5시 발행약속을 지켜오느라 지난 23개월 좋았다 힘들었다 나빴다 행복했다 했는데 지금 뭔가가 밖으로 정체를 드러내려 날 이리 힘들게 하는 건가? 그렇다면 나오고야 말텐데. 뱃속의 녀석들이 나오듯 정신과 가슴속의 정체도 세상에 나오고야 말텐데.
줄탁동시. 병아리가 알을 깰 때 엄마닭이 정확한 때에 밖에서 쪼아주듯
내 뱃속의 아가가 세상에 나올 때 내가 함께 그 길을 열어주듯
지금 내 안에서 나올 것들에 나는 얼마나 더 강하고 집중된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이지?
잘 모른다. 경험이 없다. 그저 출판사에서 의뢰한 책을 썼을 뿐, 이렇게 내 글을 쓰는 건 브런치 시작 23개월전이 처음이라 선취경험이 없다. 그래서 모른다. 모르면 막막하고 막막하면 답답하고 답답하면 아무 것이나 마구 하게 된다. 나는 지금 그래서 아무 글이나 마구 적는 중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래도 되는건지 몰라서 그냥 이렇게 쓰는 중이다.
나, 나의 글, 나의 목표,
이 모든 것들이 따로 따로 자기 속도로 움직인다.
서로 연계되어 손 꼭 잡고 가려면
내가 나의 글에, 나의 목표에 적합한 내가 되어야만 한다.
글걱정, 목표에 대한 욕구 다 내려놓고
나나 잘하자!
[건율원 ]
삶의 가치실현을 위한 어른의 학교, 앎을 삶으로 연결짓는 학교, 나로써, 나답게, 내가 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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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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