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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Sep 11. 2024

눈에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
그렇게 떠납니다.

올봄엔 유독 제비가 안 보였다. 


분당에서 경기북부쪽으로 이사온지 5년째, 이 곳엔 유독 제비가 많아서 

녀석들이 처음 집지을 때부터 알을 낳고 알에서 아가들이 나오고 모두 이소한 뒤 떠나버린 텅빈 제비집까지... 


길을 걷다가도 에미제비들이 어디론가 바쁘게 날아다닐 때마다 '참... 아가들 먹여살리기 힘들지?' 하며 혼잣말로 대화도 숱하게 나눴고 그 녀석들의 왕래는 늘 일터와 집으로 정해져 있기에 제비를 눈으로 따라가보면 집근처 편의점부터 호프집, 횟집... 음식점 어닝마다 터를 잡은 아가들의 보금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참... 시골도 아닌데 이런 볼거리들이 이 곳으로 이사온 후 날 즐겁게 했었다. 


그런데 올해엔 유독 제비가 안 보였다. 

이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뚫리고 아무래도 그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 곳에서의 정을 떼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집근처 음식점 어닝에 터를 잡고 이소를 준비중인 아가제비들. 그런데 유독 한마리의 덩치가 너무 작아 걱정이다(사진 왼쪽부터 3번째). 그래도...잘 이소했겠지....



나는 이 곳에서의 이별을 기쁘게 준비하고 있다.


느닷없는 느낌으로 '글로 먹고 살기'를 선언하고 그리고 몇달이 지나, 그러니까 지난 8월. 또 느닷없이 '9월30일에 난 시골로 간다.'고 말도 안되는 선언을 하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양평에 그토록 갖고 싶었던 마당있는 집에 가기로 맘먹고 시세보다 무려 2억이나 싸게 집을 내놓는 것부터 손에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렬한 느낌으로 내 마음에 자리잡은 실체를 따르기로 했다. 분명 소란스러울 것이 뻔하지만 그렇게 혼자 조용히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9월 20일. 시골로 간다.

어떻게 이 불경기에 집이 쉽게 팔리고 

어떻게 딱 원하는 그 곳에 

딱 내가 원하는 집이 있는지.

불과 1달도 되지 않은 이 짧은 시간, 

일사천리로 매번 기적과 만난 시간들을 하나씩 기록해보려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떤 종류의 선천적인 구체적 원칙이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원칙은 인간의 모든 사고, 감정, 의욕의 총결산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피와 체액 속에 잠겨 있다.


이 원칙은 추상적인 형태로 알 수는 없다.


일생을 되돌아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시종일관 이 원칙을 지켜왔다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이 이 원칙에 이끌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주)'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시종일관 지켜왔던 꿈과 원칙의 실현이 세상의 테스트에 통과된 느낌으로 나는 시골로 간다.


'글로 먹고 살기'라는 포장안에 차곡차곡 담아둔 수많은 가치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위한 나만의 터로 

나를 옮긴다. 


한동안 날 즐겁게 했던 제비들이 이소를 위해 훌쩍 보금자리를 떠나듯

나도 훌쩍 이 곳을 떠난다. 


브런치에서 숱하게 얘기했던 

정신의 물질화 / 관념의 형상화 / 꿈의 현시화.

'건율원'이라고 '끄적노트'에 끄적여둔 지 10년이 넘은 지금...

이렇게 느닷없이 현실이 될 지 몰랐다.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나도 모르게 내 피와 체액속에 잠겨 있는 그 몽글거리는 바람(wish)들의 실체를 위해

마치 수를 놓듯 상세하게 짜여진 하루하루의 기적에 이끌려

나의 모든 사고, 감정, 의욕의 총결산을 따라

그렇게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시골로 간다.



주>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 나래북


* 매주 수요일 5:00A.M. 발행되던 지담단상은 오늘로서 끝을 맺고

 다음주부터 '나는 시골로 간다.'의 리얼스토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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