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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l 14. 2024

스스로의 소리를
다시 듣는 수단으로서의 글쓰기

글수정에 쩔쩔매다가 깨달은 의미 

어제 카페에서 '엄마의 유산'을 쓰고 있는데 기타를 맨 두명이 아주머니들이 들어왔다. 바로 옆건물인 주민센터에서 기타를 배우는 중인가보다. 아무도 없어 조용했던 카페는 순간 이 두 여성의 수다로 꽉 차버렸다. G7, DM, F 익숙한 단어들로 그녀들의 수다는 채워졌다. 기타초보인 듯하다. 20대에 기타 쳤던 나여서 정도 코드는 눈감고도 치는데 싶어 잠깐 그들의 난감함이 내게 기쁨으로 들리기도 했고 여성들은 한가하게 기타배우러도 다니는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고 취미가 없을까 싶어 이상하기도 했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리는 것은 

"그치? 이 코드 너무 어렵지? 하하호호"하며 박수까지 치는 이들의 날카로운 소리가 커서인지 내 집중력이 약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하나로 푹 깊이 들어가던 정신은 이내 짜증이라는 감정에 한방 제대로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감히 내가 날 통제할 수 있다고 자부하기에) 내 정신과 손가락에 날 다시 빠뜨릴 수 있었다.  


그녀들이 등장하기 전 난 한참... 심각한 상태였다. 글을 쓰는 것보다 수정하는 것이 더 어렵다. 난 쩔쩔매고 있는 중이었다. 


초고를 3차례 수정했는데도 끝이 없다. 이는 내 사고가 그 사이 더 깊어지고 확장되어서일수도 있지만 괜한 꼬투리를 잡아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수정수정수정작업에 쩔쩔매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글쓰기 수업때 인용으로 추천해준 김우창교수의 글귀가 딱 떠올랐고 카페에 기록해놓은 그 글귀를 찾아 여러번 다시 읽었다.


'로고스의 분출, 이성의 한없는 과제라는 생각이 인간의식에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성은 여기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일어난 이성이 존재를 가로지른다. 여기에 스스로의 소리를 다시 듣는 수단으로서 글쓰기가 큰 역할을 한다(주1).


22년 여름부터 가을로 넘어가는 그 당시 나는 '깊이'와 '깊이의 생태학'에 빠져 있었다. 깊이 들여다본다는 것, 깊이 사유한다는 것, 깊은 내용을 담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왜 모르지? 의 한계앞에서 '깊이'를 파고 싶은 욕구가 막 시작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다 9월 18일 브런치에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지금까지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지속하게 된 것이다. 이 글, '스스로의 소리를 다시 듣는 수단으로서의 글쓰기'때문에. 글쓰기가 내게서 탄생될 이성을 자극하고 또 이성이 나의 존재를 가로지르는데 역할, 그것도 큰 역할을 한다고 했으니. 

그래서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쓴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브런치는 '나의 글 연마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엄마의 유산'을 수정수정수정하는 이 과정을,

내 의식 속에서 어떤 사건들을 자꾸만 만들어내며 로고스(주2)가 새로운 로고스를 분출중이라고 정리하기로 했다. 


꼬투리잡는 집요함도, 엉망인 글이라 수정할 게 많은 것도 아닌, 말로부터 탄생하여 글로 옮겨진 이 단순작업은 내 이성의 흐름이 언어로 분출되며 지속적으로 나의 존재를 가로지르는 과정이라는 사실과 이 속을 채우고 있는 내 이성의 역사가 지닌 부피와 밀도를 더 순도높게, 더 근원적으로 깊게 다듬는 것으로서 지나간 이성의 역사를 재단장시키고 있는 숭고한 작업이라 여기기로 했다. 


이로써, 글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내게 또 진입했다.

나의 이성의 역사구나.... 

이성이 흘러간 물길이구나.... 

다소 혼잡하고 엉성했던 이성이라는 물이 정화과정을 거쳐 순수하게 물자체로만 남고자 하는 절규의 시간들이구나.... 

글은... 그렇게... 글을... 정화시킴으로써 내 이성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구나.....


그래서였다. 

글을 쓰는 것보다 수정이 더 어려운 이유가 그래서였다.

물인 줄 알았는데 혼탁함이 보이고 

불순물을 걸러낸 줄 알았는데 다른 첨가물이 투입되었고

그렇게 계속 다른 시점으로 향하는 물의 속도보다 정화의 속도를 더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던,

그것이 글을 수정하는 과정인 것이구나.


하기 싫고 지루한, 그런데 해야만 하는 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것에 있어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큼 빠른 지름길은 없다. 지루하고 하기 싫은, 그런데 해야만 하는 탈고 직전의 수정과정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이 작업에 '고귀함'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가슴에 담아본다. 내 이성이 어떻게 탄생, 소멸, 재형성되면서 단단해지고 강력해지는지... 이성의 역사를 나는 지나는 중이다. 멋지다. 탈고직전 수정과정은 그렇게 내 이성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고귀한 작업인 것이다.


주1>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김우창, 김영사

주2> 로고스(logos) ;  언어(말), 진리, 이성, 논리, 법칙, 관계, 비례, 설명, 계산 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그리스어, 어원은 '말하다'(혹은 '말한 것'), 로고스는 일상적 언어에서 차차 이성, 사유, 정신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정신적 기능과 관련된 개념.[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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