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 새벽은 아주 많이 멍...하다.
멍...하면 내 모양새가 너무 보기 싫고
멍...하면 시간이 소멸되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멍...하면 지금껏 쌓아온 것을 잃을까 두렵고
멍...하면 이 틈에 어리석었던 과거로 돌아갈까 도망치고도 싶다.
오늘 새벽,
탯줄잘린 아가처럼
뭘 해야할 지 몰라, 그러니까 그간 해왔던 것들에서 이상하리만치 뭘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멍한 시간이 계속되자 자꾸 속에서 눈물이 차오르더니 급기야 코까지 찡하고 눈에도 물이 고인다.
새벽의 집중과 몰입은 내 주특기이고
이 때 창출되는 것들이 내가 가장 반기는 것들인데
오늘 새벽,
난 낯설다.
몸속 피가 제갈길 가지 못해 보채며 피부아래에 고이면 시커멓게, 벌겋게 멍으로 자기를 드러낸다.
정신도 해야할 것을 찾지 못하면 내게 보채듯 울채된 채 '멍'한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나보다.
어디에 부딪혔는지도 모르게 시벌겋게 멍이 드는 것처럼 지금 내 정신의 멍도 마찬가지다.
몸의 시벌건 멍도 시간만이 해결해주듯
정신의 멍한 멍도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이런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나는 뭐든 적어보기로 했다.
책읽고 글쓰는 대신
펜을 들고
수첩을 꺼내고
내가 뭘 적나 봤더니 [내가 해야할 것들]을 적고 있다.
나란 사람... 참...
해야할 것들이 꽤 많다........
그리고는 이내 아... 내가 멍한 이유를 알았다.
며칠 전부터 '이렇게 글만 쓰며 살아도 되나?'라는 의문이 훅 들어왔고
이쪽에선 '그래도 돼. 하지만 네가 쓰는 모든 글들에 더 깐깐해 봐'
저쪽에선 '글로 연계된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해 봐'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우선 이쪽의 답부터 따르기로 하고 현재 글을 연재하는 브런치와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그리고 유북의 글들에 조금 더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고 있다. 정성을 더 들이면서 알게 됐다. 내가 지금껏 대충 하고 있었다는 것을.
습관이란 녀석은 내게 들이기도 참으로 어렵지만 들였을 때 느슨해지는 것이 이 녀석의 습성이다. 습관을 들여 일상이 된다는 것은 정말 귀하게 얻은 보석인데 이 귀한 보석도 소유한 자의 뻔뻔함과 자만으로 귀한 줄 모르고 공기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새벽독서, 새벽글쓰기, 브런치 매일 발행... 이제 내게 완전히 체화된 것들을 나는 '그냥 이 정도에서 당연하게..' 밥먹듯 하고만 있었다. 가끔 식탁에 불고기 전골을 올리듯 디테일까지 신경써가면 한 적도 있지만 그냥 일상의 밥상처럼 그저 그렇게 글을 쓰는 날 발견한 것이다.
정성, 진정성이 습관에게 그만 하품하라고 경고했다. 요며칠 디테일하게 글을 다듬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는 일상이 날 꽤 피곤하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불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피곤한만큼 쾌감이 커진다.
그랬는데....
오늘 새벽의 '멍...'은 뭐지?
저쪽 녀석이 왜 자기가 알려준대로는 하지 않냐고 따지는 것일테다.
글로 연계된 다른 무언가를 더 하라는 신호를 무시해도 될까, 버거워도 시도해야 할까.
새벽의 선택은 '나보다 태양을 믿는' 선택이라 느낌대로 간다.
태양이 출두에 앞서 내게 숙제하나 내밀고는 날 찾아와 검사할 것 같은 기분?
그러니 거역이 안된다.
아..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태양을 빤히, 정면으로, 두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려면, 해야해!
아.. 버거운데.. 하면서도 태양이 한치의 오차없이 매일 날을 밝히는 건 쉬운 줄 알아? 해야해!
아.. 싫은데.. 하다가도 태양이 널 봐준다는 데 이게 감정적으로 좋고 싫고 따질 일이니? 해야해!
온 얼굴의 인상을 찌뿌리며 두 눈을 있는 힘껏 꾹 눌러 감고는
입술도 오지게 다물어본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찬찬히... 써내려가는 걸 보니
내 마음이 날 어디로 이끄는지 알겠다...
나는 그렇게 또 순응하며 따라야할 존재임을 알겠다...
정신에 든 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이유마저 알겠다...
그렇게 수첩에 적은 '해야할 것'들을 서툴지만 다시 해보는 날 응원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