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언제부터 손을 더디게 했을까.

by 지담


올해 첫 모종을 심었다.


이 시기엔 읍내 나가면 꼭 들르는 곳이 모종가게다.

시골초년생인 나는 또 이것저거 묻기 바빴고

그냥 심으면 자란다는 '명이나물' 모종을 샀다.


그리고 신나게 집으로 올라오는데

아랫집 은희씨가 아욱을 심고 남았다며 씨를 주었다.

그냥 '솔솔' 뿌리면 된다며.


와우! 신나는 시간이 또 펼쳐진다.


해가 잘 드는 비탈에 심으려 호미로 땅을 솎아내는데

조용하고 컴컴한 세상에서 갑자기 파헤쳐진 재앙에

새끼손가락만큼 굵은 지렁이 몇마리가 온몸을 비튼다.



미안한 마음이 잠시 스치는 순간,

과거 아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십년도 더 지난, 선명한 기억.

나는 한참 눈시울을 붉힌채 가만히 있었다.


어린 아들은 항상 비가 그치면 바로 나를 재촉했다.

'엄마, 얼른! 얼른 나가자!'

귀찮은 나는 아들 뒤를 따랐고 아들은 빠르게 앞서 달렸다.

화단 밖으로 밀려 나온 지렁이를

손으로 냉큼 집어 인도 옆 흙 위에 내려놓는 아들.


'징그러워, 손으로 만지지마!'

뒤를 쫒는 내 소리는 소용없었다.

아들은 서둘렀다.

'사람들 다니기 전에 얼른 옮겨야 해!'

작은 발은 더 빨라졌다.


아들과 손잡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물었다.

'아들! 네가 그렇게 한다고 저 많은 지렁이를 어떻게 다 살려?'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옮겨 준 얘들은 살잖아.'


지금 나는 거창하게 말하고 있다.

원리와 정의를 말하고

존재와 사랑을 설명하며

삶을 써나가고 있다.


살아있는 것보다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에 더 오래 머물고

눈앞의 생명보다

머릿속 개념을 더 정연하게 만들며 살아왔다.


이해가 언제부터 손을 더디게 하는 방향으로 흘렀을까.

개념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이

행동을 유예시키는

가장 그럴듯한 방식이 된 것은 아닐까.


은희씨에게 얻은 아욱씨 / 비탈에 심은 명이, 그리고 그 옆에 아욱씨를 솔솔 뿌렸다.


'그래도 내가 옮겨준 얘들은 살잖아.'

호미를 쥔 내 귀에 아들의 말이 다시 들린다.


지금 내 손때문에 뒤집힌 이 작은 것들이

그 날의 아들을 떠올리게 하고

나를 가르친다.


호미를 쥔 손은

좀 더 오래 머뭇거릴 것 같다.

내 앞에서 꿈틀거리며 땅을 파고드는 것들이

여전히 나를 보고 있어서.


- 2026. 3월 끝자락. 명이모종을 심고 아욱씨를 뿌리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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