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자 마을 어르신들 손길이 아주 분주하다.
글을 쓰다가 동네 한바퀴를 돌 때마다 어르신들은 밭에서 뭔가를 뿌리시거나
호미로 흙을 솎고 계신다. 흙이 계속 뭔가를 밀어내는 통에 밭도 덩달아 바쁘다.
흙색의 밭에는 때이른 푸른 잎들이 벌써 솟아났다.
"이게 뭐예요? 뭔데 벌써 이렇게 자랐어요?"
작년에 처음으로 작게 일군 텃밭이 너무나 재밌어서 올해도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나는 질문이 많다.
"시금치"
"시금치 모종을 어디서 사요? 저도 심어보고 싶어요!"
"그냥 저기 로컬푸드가서 씨사서 솔~솔~ 뿌리면 돼."
"씨를 뿌리면 자라요? 정말요?"
순간, 어르신은 날 빤히 쳐다보셨고
나도 순간, 내 말에 어리둥절했다.
씨를 뿌리면 당연히 싹이 난다.
뿌린대로 거둔다.
나는 안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왜
"씨를 뿌리면 자라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을까.
작년에 밭을 일굴 때엔 모종만 심었었다.
기억해보면 씨를 뿌려도 되었을텐데 씨를 뿌리는 일은 내게는 모험같았다.
싹이 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니, 씨를 뿌려본 경험도 없으면서 나는 왜,
'씨가 싹이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의심했을까.
진리를 의심하는 심리.
나는 나의 바보같은 질문에 하루종일 억울했다.
도대체 나의 과거에 무엇이 내게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생각해 보니 이뿐만이 아니었다.
'믿는대로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의심했고
'치른 대가만큼 보상은 돌아온다.'는 말도 알지만 머뭇거렸다.
씨를 뿌리면 당연히 싹이 난다.
하지만 나는 경험이 없다.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몸이 알지 못하니 믿지 못했다.
나는
아는 대로 믿지 않는다.
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본 적도 없는데 어릴 적 나는 모서리에 앉으면 귀신이 나온다는 엄마 말을 믿었고
몇바퀴를 돌면 원더우먼이 되는 줄 알아서 매일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고
산타할아버지가 오려면 굴뚝이 있어야 하는데 굴뚝없는 우리집이 걱정이었다.
이제 나는
모서리귀신도, 원더우먼도, 산타도 사실이 아닌 걸 안다.
그런데
모서리에 앉지 않고
원더우먼을 꿈꾸며
크리스마스엔 산타를 기다린다.
그러니 나는,
경험만으로 믿는 것도 아니다.
나의 믿음은
진실도, 경험도 아닌
기울어지는 쪽으로 향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내 마음보다 먼저
발길이 집이 아니라 로컬푸드로 향했다.
저녁에 비가 온다니 얼른 씨앗을 뿌리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로컬푸드로 달려가 씨앗을 샀다.
종자소독을 했다지만 영롱한 푸른빛이 감도는 너무나 이쁜 씨앗이 내 손에서 흙 위에 뿌려졌다.
아마도 싹이 올라올 때까지 내 마음은 온통 시금치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믿고
몸으로 경험하고
결과로 진리를 발견하는.
원더우먼이 되려
뱅뱅 돌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 202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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