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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7. 2022

'자식키우기'보다 더 어려운
'나키우기'

'부(富)'와 '선(善)'에 대한 소고

내가 진행하는 새벽독서모임은 '부'와 '성공'을 지향한다.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관계적, 경제적인 '부'를 이뤄

내 인생의 가치실현, 즉'성공'의 길을 걸으려 치열하게 책을 읽는.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을 위해 해뜨기전부터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우리는 늘 새벽마다

자신의 '부'와 '성공'을 위해

시류를, 인간을, 자본을, 그리고 '선'을 공부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나의 성공을 위해 더 크게 나를 키우고 있다.



나의 '부와 성공'에 대한 견해에는

명확한 2가지의 기준이 있다.

잉여와 균형.


부는

기본이 해결된 그 이상의 잉여를 

세상에 나누기 위한 것으로 

삶에 있어 필요한 기본적인 안정을 기준한다.


육체의 부, 건강할 때 누군가에게 힘을 보탤 수 있고(의지하지 않을 수 있고)

경제의 부, 내 생존이 해결되어야 누군가에게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있고

관계의 부, 인간에 대인지가 되어야 누군가와 사고(思考)를 공유하거나 이해할 수 있고

정서의 부, 내 마음이 평안해야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고

지식의 부, 기본지식이 쌓여야 지혜로서 누군가를 이롭게 할 수 있고

정신의 부, 내 정신의 중심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제대로된 판단을 내놓을 수 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사람, 마음, 정신, 지식, 그리고 재물이

나에게로 와

더 크고 더 강하게 몸집을 불려

다시 누군가에게로 흘러가게 하는.


나는 그저 매개자임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의무와 역할을 스스로에게

명령하고 실천해야 한다.


들어오면 그 이상으로 내보내고

마모되면 새롭게 생성시켜 내보내고

소모되면 다시 채워 내보내는,

부의 다양한 조건들의 균형,

이쪽과 저쪽의 양극의 균형을 

이뤄나가는 것이

진정한 부의 추구이며

성공을 향한 길위의 실천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나'라는 자원의 잉여를 만들고 

그 잉여의 분배를 위한 균형을 실천하여 

세상 속 내 자리를 잘 지켜내는 조화를 이룰 때,

그리고 이 과정의 선순환을 이뤄낼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선한 부자, 진정한 성공자'라 부를 수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될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내 옆의 누군가에게 전염시키면 안될까?

내가 먼저 그 길을 걸어가면 안될까?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 안될까?

내가 갖고자 하는 결과를 지금 내 가슴에 씨앗으로 심으면 안될까?


평범한 '나'라는 'somebody'가 한다면, 할 수 있다면,

내 곁 누군가인 'anybody'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닮아도 괜찮은 나'로 나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이것이 진정한 

개인의 최고선(善)과

모두를 위한 공공선(common good)의 

동시와 연속적 발현이지 않을까?


결국,

지금 내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지금 내가 들어야 할 소리는 나의 소리이며

지금 내가 전해야 할 의미는 나의 가치이며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예리한 시선,

나의 냉철한 이성,

나의 뜨거운 가슴,

나의 든든한 다리로

내가 가야할 길은 나의 길이다.

나의 길을 제대로 가는 자야말로 공공의 선을 실천하는 자인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많아지면

우리가 염원하는 유토피아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나를 부자로, 나를 성공자로 만드는 

이기(利己, 자신을 이롭게 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 이타(利他, 모두를 이롭게 하는)로 

승화된다는 것이

'개인'과 '공동' 모두를 위하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가 아닐까?

감히 말하건데,

이 논리가

애덤스미스가 알려준 자리(自利),

에머슨이 알려준 자시(自是),

샤무엘스마일즈가 알려준 자조(自助) 아닐까?


나는 나에게 믿음을 주련다.

세상은 '선'을 추구하는 '선한 부자' 또는 '선한 부자가 될' 나에게 

결코 부당과 불합리와 부정을 들이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것으로 허락되었다는 믿음.

세상 모든 것 가운데 나는 유일한 창조물이라는 믿음.

세상 모든 것 중심엔 내가 서 있다는 믿음.

세상이 나에게 준 명령을 모두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이러한 나에 대해

결코 우주는 방심하지 않는다는 

우주가 나에게 한 거대한 약속에 대한 믿음.


이러한 '부와 성공', '선'의 개념과 논리와 믿음에 따라

나는 부자가 되어야겠다.

나는 성공해야만 하겠다.


개인이 인류를 위해 최고의 선을 행하는 단순함은

나를 나로써 잘 키워내어

크기만큼 모두, 모든 것에 증여하고

내 것을 나눠받은 그도 '부'와 '선'을 계승토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시작은.

나부터인 것이다.


개인은

그 자체로서 전 인류이며

인류는 

개인의 초유기체가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우주이기에

나의 부는 

인류의 선이라는 논리에 대해

비약이라고 누가 반론할 수 있을까?


부와 선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신 분께서는

부족하지만 저의 브런치북 '철학에게 부를 묻다'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hilosophyby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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