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과 '탐닉'에 대한 소고
신이 내게 벼슬을 내렸다.
무엇을 잘했는지 어떤 시험에 통과했는지
어떤 벼슬인지조차 나는 모른다.
벼슬을 주셨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저 감사하고 놀라울 뿐이다.
벼슬 덕에 나는
신이 차려놓은 성찬을 마음껏 즐기도록 허락받았고
한상 가득 차려진 그것들에
나의 눈과 혀와 손은 분주하다.
신의 성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벼슬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라
약도 독도
단것도 쓴것도 있겠지만
그 모양새가 너무 먹음직스러워 어리석은 나는
보기 좋은 것에 먼저 젓가락을 가져다댄다.
게다가 신은 너무 부지런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성찬의 메뉴를 바꿔주시니
허기졌던 나의 탐닉은
맛도 기능도 모르면서
먹음직스러운 모양새에 점점 빠져들다가
먹고난 뒤 알았다.
돼지처럼 부른 배는 두 다리를 짓누르고
화려함에 돌아간 눈은 그릇에 묻혀있는 독을 보지 못하고
기깔나는 풍미에 내 혀는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쩝쩝거리느라 애쓰는 입은 해야할 말과 들어야할 구멍을 막아버리고
이 둔탁해진 몸뚱이의 요란함이 정신의 요동을 감지하지 못하는구나를.
혀를 마비시키는 것
혀에게 자유를 주는 것
눈을 밝히는 것
눈을 가리는 것
정신의 쓰레기가 되는 것
정신의 청소를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서야 나는 깨닫는다.
신이 내게 벼슬의 성찬을 차려놓고
마음껏 먹으라 허락했던 이유는
기피해야할 것과
곁에 두어야 할 것을 스스로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부끄럽다.
당연히 날 위한 성찬인 것마냥 젓가락질을 해댔던 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대로 툭하면 튀어나와 나의 정신줄을 끊어버리는
간질병과 같은 자만에 빠져 있었고
자만을 불러온 먹음직스러움에 길들여진 탐닉 탓에
나는 좌천되었다.
신관(神官)은
나의 눈과 혀와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준삼아
내 입에 독을 넣어 나를 토하게 하고
내 입에 약을 넣어 나를 낫게 하면서
내게 있어야 할 것들만 남기게 함으로써
지금 내게 가장 적합한, 나의 현주소를 증명하는 자리인 것이다.
나의 자리에서
응당 내가 한 것에서만 자유를 누리며
잃은만큼 취할 것이며
취한만큼 나눠야 하며
신관의 자격을
매일매일 새롭게 부여받기 위해
오늘 내가 해야할 역할은
혀와 눈과 손이 제 것인 것에만 향하게끔
나의 정신을 중심에 붙들어매는 것이다.
먹성좋은 내가
딱 내 것만을 취할 때
신은 다시
알아서 나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믿음에
오늘도 정신의 줄로
눈과 혀와 손의 자유를 억압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