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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8. 2022

신에게 맞짱뜨기

'경쟁'과 '문제해결'에 대한 소고

삶은 문제의 연속이라는데.

도대체 내가 문제를 만들었나?

아니다.

그렇다면 네가? 당신이? 

그것도 아니다.

나도 그도 아닌데 

왜 삶은 문제의 연속일까?

모든 인간이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고 사는데

왜 삶이 문제의 연속이냐고?


필히 누군가가 있다. 

내게 문제를 던져준 그 '누군가'를 

나는 '신'이라 하겠다!


신이 

뭔가 의도를 가지고 날 골탕먹이고 있으니

문제에서 등을 돌려

날 골탕먹이는 신에게 맞짱뜨고

문제를 원천봉쇄 해버리련다!


나에게 낼 숙제로

늘 바쁜 그에게

더 어려운 숙제없나? 소리쳐 보련다.


나는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자신과도 경쟁하지 않는다.

문제에 함몰되지도 않는다.

문제에 내 정신이 잡히는 순간, 문제는 더 몸집을 키운다.

내 능력으로 해결하려는 순간 내 능력의 바닥만 드러날 뿐이다.

문제는 그 자체가 지닌 '해결'의 힘을 스스로 이용하고 있음을 

일단 믿고!


오로지

와라! 올테면 와봐라!

신이 내준 문제! 를 끝까지 풀어내고야 말것이니

신과 경쟁하는 오만을 가져보련다.


가만.. 그런데 

왜 신이 내게 문제를 던지는거지?

혹시 내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나?

내가 뭔가를 놓친 것이 있나?


문제는 언제 받는거지?

문제는 공부가 끝나고 테스트할 때 받는 것인데

평소에 해야할 공부가 부족하면 문제를 풀지 못하잖아.

혹시...

신은

평소에 내가 해야할 숙제를 먼저 내주지 않았을까?


아!! 바보!!!

그걸 이제서야 알다니!!!

문제가 문제인 이유는 내가 문제보다 작기 때문인데...

닥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평소에 해내야 할 숙제를 게을리했기 때문인데...


문제로 날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선

숙제를 매일매일 나에게 내주기 위해선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내가 어디까지갈지 가늠해야만

나에게 제대로된 그것들을 내줄터인데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신에게

나보다 더 나를 탐구하는 신에게

나보다 더 나를 크게 여기는 신에게

나보다 더 나를 키우기 위해 고생하는 신에게


나는 도대체 여태 뭘 한건지

일단, 사과하고 감사부터 해야 그게 도리다!


그리고 감사에 대한 나의 보답은

제대로 숙제를 풀어내는 것뿐.

모르면 깨져가며

아는건 생색내며

그리 하면 되지 않을까?


조금씩 문제보다 숙제에 초점을 맞춰가다 보니

문제보다 내가 더 커져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어간다.

어떤 위기를 느낄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모면할까를 고민하기보다 

그래봤자 어쩔 수 없다. 숙제나 하자고 나름 키워낸 사고 덕에

위기대처 능력없는 나 자신을 더 키우는데에,

그러니까 '문제'가 아닌 '나'에게 더 몰두하는 것이 현명과 효율이란 것을 알아가는 날 발견한다.

그러니 알아서 위기는 자기 설 곳이 아님을 알고 사라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문제는 일시적, 단편적, 유한하지만

숙제로 나를 키우는 것은 영원과 연속적, 다차원적, 무한하니 

분명 효율적인 것이다.


이쯤 알게 되니 점점 그의 의도에 고개가 숙여지고..

이내

나를 얼마나 크게 쓰려 하시는지

숙제는 점점 부담스러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내가 숙제에 집중할 수 있게끔

내 신경을 가져가려는 문제들은 알아서 거둬주시는 배려!!!

얘들도 알아서 잘 크고

나도 별탈없이 건강하고

내 인생에 도움안되는 이들은 알아서 떠나가고

곁에 두고 싶은 이들은 알아서 들어오고

앞으로 넘어져도 코는 무사한...


그래서 확신을 가져보련다. 


내가 시간을 보내야 할 유일한 짓은

오로지 내 정신이 '방향'의 길에 서 있게 해주는

숙제!

그것뿐.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된 나의 자리에서 

세상에 잘 쓰이는 나로 나를 연마시키는 

숙제!

그것뿐.


예고없이 나를 간파하는 날카로운 숙제를 만드느라

나보다 더 나를 위해 고생하는 신에게

백만번 절을 올려도 모자라다는걸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깊이 알아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숙제를 풀고 다음 숙제를 기다리는 것.

기다리다 심심하면 청소나 빨래로 소일거리하며 흥얼거리고

그래도 심심하면

막힌 변기나 잘 뚫으면 그만인거다.

신이 나보다 게을러 숙제가 늦게 나오는 날은

드라마나 보면서 기다리면 그만인거다.


느닷없는 숙제에

내 숙제가 아니라고 따질 재간도 없고

어렵니 마니 칭얼댈 애교도 없고

지금이 때가 아니라고 미룰 용기도 없고

그냥 그렇게

숙제를 받으면 언제 어디서든 풀 수 있는 자세로

내 정신과 육체가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끔 자리를 지키고 서있으면 그만인거다.


너무 정확한 때에

정확한 내용으로

정확한 강도의 숙제를 주실 것을 

이제는 믿기에

그냥 감사히 받아들고 숙제에만 전념하면 그만인거다.


아!

이 얼마나 단순한 삶인가!


신은 숙제만 덜렁 던져놓고

그 다음 숙제를 만드느라 너무나 바빠서인지

내가 간파하지 못했을 뿐, 너무 관대해서인지

아무튼 나에겐 무조건 유리하게 판이 돌아간다.


일단, 숙제제출기간을 정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하든 말든 나에게 맡긴다.

함정은.

지금 숙제를 끝내야 다음 숙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숙제풀이에 꼭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가져와서는 

잊어버렸는지 너무 바빴는지 챙겨가지 않는다.

사람과 자연과 책.

함정은.

모든 것을 다 던져주니 못풀면 무조건 내 탓이라는.

에고.

좀 어렵고 난해하게 꼬아 놓았지만 모든 숙제는 모두 풀어낼 수 있다는 의미.


게다가 신은 너무나 치밀하고 정확하고 냉정하고 또 가혹하다.

자기가 내준 숙제를 풀어내면

내 삶의 엉킨 곳이 풀어질 것을 어찌 이리 정확하게 예측해낼까?

'다음 숙제'는 그 '다음 문제'를 풀기 위한 숙제로.

또 그 다음은 그 다음으로.


치밀한 계산으로 딱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나를 키워줄 숙제를 던지고

그 숙제에 맞는 문제를

그 문제 다음엔 또 치밀한 계산으로 업그레이드된 숙제를.

숙제를 잘 하면 문제가 저절로 풀어지는 이 치밀한 계산.

놀랍다.


그런데 무지무지 냉정하게도, 

지금 숙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다음 숙제는 뻔하다.

과거에 풀었던 숙제를 다시 던져주신다.

한번도 그냥 진도가 나가는 법이 없다.

꼭 지금 숙제를 제대로 풀어내야 

업그레이드된, 다음 단계의 숙제를 알려주신다.


가끔 다음 숙제가 오지 않아 기다릴 땐 내심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내가 숙제를 잘못했나? 모자란가? 엉뚱한가? 너무 미루나?

여하튼 내준 숙제에 내가 미흡한 태도를 보이면 어김없이 가혹한 경고를 한다. 

자기가 바쁘니까 세상 어떤 곳, 어느 시점에 누군가, 무언가로부터 나에게 문제를 던져버리는 것이다.

아! 경고구나.


이보다 더 가혹한 것은 

내 숙제가 쌓이고 쌓여 다 풀어내지 못하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에게로 내가 못푼 숙제를 상속시킨다는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가혹해서

나는 혹여나 내 몸보다 귀한 자식에게 상속될까 두려워지기까지 할 정도다.


다행히 나는 신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기에

그가 내준 숙제, 내가 해내야 할 타이밍, 그리고 때때로 

날 정신차리게 만드는 '문제'라는 경고까지

이제는 잘 알아챈다.


여하튼 척척 맞는 호흡으로

그가 내준 숙제로 인해

나는 나를 더 키우게 되고

당연히 커진만큼 삶의 문제도 더 커지겠지만

나는 신에게 맞짱뜨며

문제보다 내가 더 커지기 위해 매일매일의 숙제를 그나마 해낸다. 


무식한데다 버릇까지 없이 

감히 맞짱뜨는 나를

오히려 이쁘게 받아주시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경쟁이란 게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무언가를 향해봤자

딱 그만큼, 일시적인 한도안에서만 쾌락을 느낄 뿐인데

신과 맞짱뜨며

문제보다 내가 더 커지려는 경쟁은

이 세상에 경쟁할 대상이 모두 없어지는

오묘한 신비로써

나의 삶을 이끌고 간다.


신이 내게 문제로 경고하면서

지속적으로 숙제를 내주는 의도를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아니, 이제라도 알아냈다!


내 인생을 살겠다는데 

왜 남의 인생과 경쟁한단 말인가?

도대체 경쟁할 대상이 누구인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문제도

경쟁도 

없는 지금,

신이 내게만 유일하게 내준 숙제를 받아들고

오늘도 난 쩔쩔매며 허덕이지만

다음 숙제가 무엇인지에 몹시 설레면서

나를 세상에 내놓을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그 숙제를 업그레이드시켜가며

나를 키워내시는 그 분께 

나는 

순종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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