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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1. 2023

나는 무뇌아(無腦我)
-선취행동의 화학변화-

이기론(利己論) - Ch1. 나는 나를 해체하기로 했다

본 글은 시리즈로 연재되기에 지난 글들에 이어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지담드림


선취 행동의 화학변화

자아의 의식혁명 단계에 이르면 단순감각은 느낌(feeling)으로 승화된다. 


즉, 보이는 것을 보는(see) 시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sight) 혜안, 안목이 되고


알고 이해한 지식은 

‘실천’이라는 입체적 경험이 보태져 지혜가 되며


귀로만 들리던 청취는 

언어에 눈빛, 말투, 자신감이 보태져 경청이 되고

 

언어로 오가던 대화는 

이면의 본질까지 공유하는 공감적 소통이 된다. 

    

앞서 언급한 이성과 비이성이 연계된 이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생각차단, 인식제어 훈련이 이성을 활동시켜 정신이 자리를 잡도록 이끄는 자아의식혁명 훈련이 거듭되면서 

이성은 지성으로,

지성은 지력으로,

지력은 지혜로,

한마디로 메타인지로 승화되는 것이다.           


자,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 더 정신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자.

내 정신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하는 질문에 우리는 관념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것을 깨지 않고 그대로 두어 고착되면 고정관념. 처음 들어온 사고가 굳어지면 선입견.이라 부르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메타인지를 갖기 위해서는 관념, 즉 나를 지배하는 생각덩어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파헤치려면 내가 어떤 생각들로 지내왔는지를 연역적으로 거슬러 가보면 알 수 있다. 관념은 내가 겪은 실재(實在)적 경험의 누적이다. 먼저 취한 행동, 즉 반복된 '선취행동'이 서서히 굳어지면서(습관이 되면서) 나에게 관념으로 자리잡혔고 이 관념이 곧 나의 정신 공간을 채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원인과 결과, 즉, 인과로 이뤄져 있다. 하나씩 연역하면 나의 정신을 채운 관념의 속성들이 체계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마치 형사가 탐문 수사하듯 말이다. '난 뭘 해도 안되는 사람이야'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연역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계속 실패했던, 좌절했던, 포기했던 경험이 드러날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난 뭘 해도 안돼'로 관념화된 사람은 잠재의식이 '내 주인은 뭘 해도 안되는 사람'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고 이렇게 커진 힘은 당연히 더 큰 에너지로 우주와 교신하며 잘 될 일도 안 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현실로 증명해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추구’에 있다. 기면 걷고 싶고 걸으면 뛰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일어나기 싫고. 이것을 먹으면 저것을 먹고 싶고 저것을 먹으면 그것도 먹고 싶고. 여기에 가면 저기도 가고 싶고 여기저기 다 가면 아무데도 안가고 싶고. 인간은 항상 ‘추구’한다. 다른 말로 ‘욕구하는 마음’, 즉 ‘욕심’을 누구나 지니고 산다. 이러한 욕심에 ‘옳음’이 가미되면 성장이고 ‘그릇됨’이 가미되면 ‘나태’가 된다. 무엇이든 추구의 강도에 선또는 악이 혼합되 하나의 방향으로 나는 움직인다.       

   

성장이란 지금보다 나중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성장, 즉 더 나은 결과를 위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첨가되어야만 한다. ‘변화’말이다. 즉 ‘욕구’에 의해 감각으로 느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변화가 요구되고 변화의 시작은 안.하.던.짓.을.하.는. 것부터다.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짓이기도, 선취행동과 반대되는 내지 선취행동을 안하는 짓일 수도 있겠다. 


앞서 언급하였던 순환단계에서 행동의 전단계가 바로 이성의 명령이어야 하니 안하던 짓을 하려면 이성이 기존의 관념을 깨도록 지시해야 한다. 관념을 깨야 한다. 배제해야 한다. 외면해야 한다.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그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니, ‘기존관념’을 의심하고 차단하고 외면하는 용기는 ‘성장’을 위한 필수다. 기초다. 기준이다.

        

제 아무리 기초이고 기준이라 하더라도 ‘선취행동으로 만들어진 관념’에 거스르는 행동은 아주 불편할 것이다. 매일 양치질을 하다가 안 한다고 생각해보라. 치약으로 양치하지 않고 소금으로 양치한다고 상상해 보라. 선취행동, 고착화된 행동을 하지 않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반드시 날 불편으로 몰고갈 것이다. 하기 싫을 것이고 짜증이 극에 달할 것이고 포기라는 단어가 내 옆에 딱 붙어 덩실거리며 날 유혹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당부한다.

안했던 행동이니까 낯선 것이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편한 것은 편한 쪽으로,

낯선 것은 익숙한 쪽으로,

어설픈 것은 숙련되는 쪽으로 방향은 정해져 있으니

그냥 반복하면서 죽 가야 한다고.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추구’의 본능을 지녔다.

‘추구’의 전제는 ‘변화’,

‘변화’의 전제는 ‘새로운 시도’,

‘새로운 시도’의 전제는 ‘안 하던 짓’,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것은 ‘불편’과 ‘낯섦’.

‘불편’과 ‘낯섦’은 반복만이 편함과 익숙으로 이끄니

내가 해야 할 것은 안 하던 짓을 반복하는 것뿐.

간단하고 단순하고 명료하다.    

         

행동의 반복은 익숙을, 익숙은 편함을, 편함은 재미를, 재미는 습관을, 습관은 중독을 가져온다. 즉, ‘무의식적인 행동’을 창조해낸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나중에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체화되어 드러난다는 의미다. 행동->정신->감각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을 단계로 표현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안하던 짓(무행동)을 안하는 지도 몰랐던(무의식) 내가 어떠한 변화를 위해 안하던 짓(무행동)을 하려는 시도(유의식)를 하게 된다. 이것을 계속 반복(유의식 / 유행동)하면 어느 순간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도 모르게 그 행동이 습관화(무의식 / 유행동)되어 있는 것이다. 드디어 몸에 체화된 것이며 이로써 변화에 성공한 것인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유의식 / 유행동)단계까지의 양이 쌓였을 때 습관.이라는 결과를 거머쥐게 된다.    


따라서, 양을 쌓는 반복의 단계는 필수다. 

양이 쌓이면 질적인 승화가 일어나는, 

물리적인, 물질적인 가격(加擊)은 화학적인, 비물질적인 변화의 결과라는 사실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자 원리인 것이다. 


지식이 지혜가 되고, 

인식이 의식이 되고, 

인지가 메타인지가 되고, 

소리가 경청이 되고, 

대화가 소통이 되는 차원은 

단지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변화가 아닌,

질적변화, 

차원의 변화,

화학적 변화, 

혁명적인 변화다. 


그래서,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묻지말고!

양부터 쌓아야 한다. 

양의 반복만이 

'자아의 의식혁명'을 위한 변화와 성장의 답이다.         



==> 다음 편, '멘탈드로잉'는 다음 주 월요일(12/18) 발행됩니다. 


독자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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