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14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해하지도 못한 채,
아니 이해하기도 전에 무조건 '위로'부터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혹시 너도 그러니?
그런데
가만 떠올려보면, '위로'부터 건네주는 대화에서 어쩌면 공감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을거야. '위로'는 너의 심정을 이해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너의 심정을 무시하라는 의도도 숨겨져 있거든.
아! 혹시 엄마의 말이 네게 오해를 살지도 모르니 이 말부터 먼저 해야겠다. 네게 위로를 건네는 그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어떤 의도를 가졌다는 것은 아니야. 의도가 있다면 널 도우려는 의도가 존재하겠지. 네가 누군가를 위로할 때도 마찬가지구. 그러니 이 글은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 자체가 가진 본성에 초점맞춘 이야기로 들어주길 바래.
인간은 모두 자기 안에 다 가지고 있어.
상황을 이기는 힘,
자기 스스로를 진단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힘,
소멸되어 가는 감정까지도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힘.
'위로'는
어쩌면 네 스스로 꺼내쓸 수 있는 그 힘들을 꺼내쓸 기회를 없애버리는,
어쩌면 그런 힘이 있었는지조차 망각시켜 되려 너를 약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살면서 위로, 위안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위로와 위안이 정말 필요한 때인지는 자기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거든. 알고 있지만 감정에 휩싸여 누군가에게서 계속 듣고 싶은 것이거든. 또는 자기 스스로 이미 위로필요없이 일어설 힘이 있는데도 지팡이짚고 일어나는데 길들여진 것이지.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렴.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닌데 또는 스스로도 감정해갈이 가능한데 '위로'부터 받게 되었을 때 결코 공감이 일어나지 않았을거야. 게다가 '위로'를 원한 게 아닌데 상대가 배려한답시고 '위로'했을 때 오히려 할말을 잃었을거야. 물론 상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위로'란 게 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바라지 않던 상황에서 만난 '위로'는 오히려 무시받는 느낌을 주기도 한단다.
'위로가 필요했던 사태'를 파악하기 전에 '위로'로 감정부터 진정되면 냉철해질 것 같겠지만 전혀 아닌 경우가 더 많아. 강하고 단단한 이성은 감정이 강할 때 오히려 자기힘을 잘 쓰지만 그렇지 않은 이성은 감정이 요동칠 때 제대로 서기보다 비스듬히 선 채 본질을 보는 눈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심하면 본질을 외면하기도 해. 감정이 먼저 움직이면 대개 이성이 제 힘을 못써. 이성적인간이 이성의 기능을 못해내지.
그래서,
뚜렷하게 볼 수 없도록 네 판단의 시야를 막아버리는...
그리고 또 이런 면도 있단다.
'위로'에 길들여진 사람에겐 늘 '위로'받을 일이 계속 생겨.
아니, '위로'받을 일을 계속 끌어당기지.
'위로받을 일이 없으면 되려 난감한' 인생으로 자기 인생을 몰고가게 돼.
'위로'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은 스스로 이겨낼 힘이 거의 바닥나고 있다는 증거겠지? 계속 '위로'를 구하고 받게 되면 '위로'받는 것도 습관이 되고 습관이란 녀석은 계속 자기의 힘을 키우려는 본성이 있어서 계속 그런 사태를 몰고 오도록 너를 그 쪽으로 향하게 해. 너의 잠재의식도 '우리 주인은 위로받아야 해'라고 기억하고 세상은 '너는 위로가 항상 필요한 인간이지?'하며 계속 위로가 필요한 상황만을 네게 일으키지.
반면,
네가 '위로'를 거부한다면 '위로'는 네 인생의 불필요한 장식일거야.
오히려 너는 네안에 이미 지니고 있는 힘을 이용하기 위해,
다시 말해,
네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키우기 위해 '위로'로부터 등을 돌림으로써
너의 힘으로 네게 올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할 수 있게 되지.
위로는
인정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을 때,
난감한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결과로,
억울한 일로 인해 자신의 진실을 알아주길 바랄 때,
이런 경우에 갈구하거든.
너 스스로 널 인정해주는 걸로 부족하니?
난감하여 이성적판단이 어려울 수 있어. 그 땐 위로라는 감정보다 이성적인 조언이 필요한 것이고
진실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면 진실을 행한 너 자신을 너 스스로 일단 믿고 왜 진실이 희석되어 드러났는지 그 연유에 대해 행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지.
'위로', 즉 감정을 달래는 것이 불필요하다기보다
'이성'과 '행위'를 점검할 기회를 감정으로 인해 가볍게 여기거나 점검조차 하지 않는 경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의미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면 정말 '위로'가 간절할 때가 있어.
인간은 모두가 나약하니까.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점점 힘이 강해지는 것인데 힘이 강해지는 것은 그 순간 자신의 모든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반복된 경험으로 힘의 크기와 강도가 상승하지. 힘을 키우기 위해 힘을 키울 상황이, 계기가 필요하지? 너를 강하게 하기 위해 네 인생에 미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란 말야. 어떤 '사태'를 통해서만 '위로'가 필요하니 그 사태와 사태로 인한 너의 요구, 즉 위로는 너 스스로 너를 키울 수 있는 엄청난 성장의 기회이자 감사의 순간인 것이야.
좀 더 보태자면, 어떤 사태를 만난다는 것은 생전 겪어보지 않은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라 낯설 수밖에 없고 경험이 없으니까 방법도 모르고 그래서 다치기도 하거든. 다치면 병원에 가듯 감정이 심하게 다치면 '위로'가 필요하지. 그런데 무작정 병원에 달려가지는 않아. 늘 병원부터 찾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치료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해.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는 것은 네가 낯선 경험을 했다는 것이며 이는 곧 너를 강하게 하기 위해 온 것이라는 연관이 네 정신에 자리잡히길 바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네가 뭔가를 시도했기에 그 결과가 현상과 감정으로 나타난 것이야. 그러니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 네게 등장한 것은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지!
그 '위로'를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가렴.
그리고 가서 말하렴.
지금은 아무 말도 말고 그냥 '위로'받고 싶다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나약한 길로 인도한단다. '위로'도 도움의 한 줄기거든. '잘될거야', '괜찮아', '잘하고 있어' 무턱대고 위로부터 건네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네 상황에 귀기울여 물어주고 들어주고, 네게 부족한 이해를 해석해주고 용기있게 조언도 주는, 그래서 너의 이성과 행동을 점검케 해주는, 그런 이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렴. 마음을 열렴. 너를 보여주렴. 그리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렴. 무턱대고 해주는 '위로'에 길들여 진다면 너는 너의 힘을 오히려 잃게 된단다.
또한,
네게 '위로'를 구하는 이들이 널 찾아오기도 할 것이고
'위로'가 필요한 이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겠지.
그럴 때도 너는 지금까지 말한 대로 정신의 기준을 지키며 상대를 대하길 바래.
'위로'를 원하면 묻지 말고 '위로'해주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대의 속내까지 진심으로 네가 이해한 후 '위로'가 필요하다면 위로를, 그게 아니면 그저 침묵한 채 평소처럼 대해. 곁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니까. 어줍잖은 위로와 조언, 칭찬은 오히려 상대에게 해가 돼.
세상의 칭찬은 맛있는 음식과도 같다(주).했어.
맛있는 것의 유혹에 감정이 지배당하면 마지막엔 반드시 탈을 내지.
달콤한 설탕에 길들여지면 반드시 치아가 썪게 돼.
위로도 마찬가지야.
'괜찮아 괜찮아', '잊어버려', '좋은 생각만 해', '너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라는 몇 마디 말은 '위로'가 아니라 '위장'이야.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 한다는 명령이고 잊혀지지 않는데 잊으라는 강요이고 지금 좋고 멋지지 않은데 그 감정을 외면하라는 회피야. '다 잊어버리고 우리 즐기자!' 같은 말들은 특히 위험할 정도로 위장된 말이지. 이성을 버리고 감정만으로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뿔난 이성이 널 더 다그쳐서 더 힘든 시간이 네게 닥칠지도 몰라. 더한 것도 있어.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나는~~~' 이라며 자기 과거를 들먹이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말은 외면해버려. 너와 어떤 관계에서 어떤 분위기에 그런 말을 했을지라도 그런 말에는 '네 감정은 별 게 아니야.'라는 조롱이 담겨 있는 것이야.
물론, 이와 같은 말들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진정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로 가서 위로받으라는 것이지. 그들은 결코 널 조롱하거나 비하시키지 않고 네 감정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줄 것이고 네게 이 말들은 '위로'를 너머 조언과 충고로 긴 시간 널 강하게 할거야.
이제 '위로가 안개같다‘는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너는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네게도 진정한 '위로'를 해줄 사람을 곁에 두게 돼.
네 곁에 좋은 사람이 많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야 하지.
세상이 아름답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아름다워져야 하지.
따뜻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따뜻한 사람이 되야 하지.
믿을만한 사람이 많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신뢰있는 사람이 되야 하지.
아마 이렇게 상대와 소통한다면 너는 네가 만나는 상대와 더욱 충분한 신뢰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야. 뿐만 아니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하나씩 가슴에 묻고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일조차도 서로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게 될거야.
'위로'가 필요했던 사태가 오히려 '신뢰'있는 너를, 관계를 이끈단다.
바로 이 점이 '위로를 몰고 온 사태'가 네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야.
네게 미운 모습으로 등장한 모든 것들도 네 인생에서 널 위해 해야 할 역할을 하러 등장한 것이란다.
즉, 신뢰있는 사람을 네 곁에 머물게 하기 위해, 그런 이들과 삶에서 꼭 필요한 지혜를 나누게 하기 위해 세상이 네게 '위로받을 사태'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넌 깨닫게 될거야.
세상은 큰 가르침을 얻을만한 사람에게는 큰 대가를 치르게 해. 그리고 '위로가 필요한 사태'를 통해 네가 큰 가르침을 얻을만한 사람인지를 테스트하는 거야. 그 때 '위로'받으며 감정만 달랜다면 큰 가르침을 얻을 기회를 잃게 되지. 세상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위로가 필요한 사태'를 던져. 네가 외부로부터의 '위로'에 길들여질지 아니면 꼭 필요할 때만 위로에 의지하고 너의 내면을 더 강하게 할지 현명한 사람이 되길 바래.
인간은 경험으로 정신에 주름을 만들지.
깊은 주름은 펴기가 어려워.
잦은 경험이 깊은 주름을 만들겠지?
위로에 길들여지지 않는다면 네 정신에는 이성이 감정을 이기는 주름이 깊게 패일 것이고
위로에 길들여진다면 네 정신에는 위로의 길이 만들어질 것이야.
어떤 길이 네 정신에 깊은 주름을 내길 바라니?
'외부로부터의 위로'는 달콤하고 따뜻할거야.
그만큼 안기고 싶고 자주 느끼고 싶지,
하지만, 꼭 기억해.
'외부로부터의 위로'에 길들여지면 너의 내면은 점점 스스로를 '위로'할,
그리고 스스로가 강해질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을.
'위로'가 자기 '진가'를 네 인생에서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에 그 일을 마치기 위해 지속적으로 '위로받을' 일을 몰고 온다는 것을.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단다.
약한 너를 위로로 안심시키는 것보다 강한 너로 키워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쾌락이 훨씬 크다고.
강한 것이 이미 네 안에 존재하는데 꺼내쓰거나 키워내지 않는 것은 너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네가 강해질수록 네 힘이 필요한 곳은 더 많아질 것이니 너의 낭비는 곧 세상의 낭비가 된다고.
그러니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 올 때 너를 키워 세상에 더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아이야...가슴에 담아두렴.
너는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시점에 꼭 필요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내면이 강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인거야. 불필요한 '위로'를 차단하고 내면의 힘을 더 키워내는 선택은 그래서 너를 점점 더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준다는 사실을....
위로가 필요할 때 스스로 애쓰는 너의 모습을 본다면
엄마의 마음은 미어지겠지.
'괜찮아'라고 달려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스스로 이겨내야할 시기라면,
엄마는 달려가지 않을거야.
안아주지도 않을거구.
나... 중에... 강해지고 단단해지고 커진 너를 네가, 세상이 더 원할테니까.
엄마는 널 위로하고픈 엄마감정을 뒤로 할 것이야....
주> 루미시집,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2019, 시공사
* 오늘부터 전체적으로 연재요일을 개편하오니 아래를 참고바랍니다.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철학'에게 '부'를 묻다]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금 5:00a.m. [느낌대로!!! 나홀로 유럽]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