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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an 04. 2024

아이야.. 2024 엄마의 다짐..
들어줄래?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16

아이야.

네가 말하듯 하루는 더딘데 1달은, 1년은 훌쩍이지? 벌써 2024년이 되고 갓난어른인 너는 이유기어른이 되어야겠구나. 이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의 동지로서 먼저 산 사람인 엄마가 새로운 해를 어떻게 맞이하는지 진솔하게 담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단다. 


엄마의 나약함을 이겨내게 만들어줄 대상이 있다면 바로 너이기 때문이지. 가끔 아니 자주 의지의 생성욕구가 마구 솟을 때도 있지만 또 반대인 경우도 많아. 그럴 때 너를 떠올리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힘이 솟거든


그래서 이번엔 너보다 엄마 자신을 위해 너에게 다짐의 편지를 쓰려 해.     


엄마의 2024는 이런 다짐으로 시작한단다.     


첫째, 엄마의 의지보다 더 강한 의지를 믿고 가려 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바닥의 굳은 살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낡은 혀가 드러나 엄마를 부끄럽게 하기도 해. 그러나 엄마는 늘 새로운 길을 찾고 그 곳에서 새로운 말을 하고 싶단다. 이런 욕구는 엄마 스스로 창조하는 것 같지 않아. 너같이 소중한 존재가 엄마를 통해 세상에 나왔으니 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싶은 책임감인 것도 같고 이런 비상한 의무를 부여하신 어떤 존재의 강렬한 욕구와 의지가 엄마의 퇴보를 제지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길 위에서 새로운 감각이 열려야 새로운 말과 새로운 걸음을 걷게 되겠지. 마치 물과 같아. 어쩌다 길에서 멀어지더라도 그 물은 스스로 물길을 내어 결국 바다를 찾아가는 본능처럼 엄마의 새로운 길도 광활한 우주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이끌 것이라 믿어. 결코 지금 엄마의 머리 속에, 경험 속에 없는 길이지만 이 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발현지인 우주의 중심으로 향하겠지.     

둘째, 호의가 칼이 될 수 있기에 착한 사람이길 포기하려 해.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이것저것 퍼주기 좋아하고 관심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간섭도 많고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아줌마잖아.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나의 배려가 오히려 상대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더라구. 스스로 키워낼 수 있는 시점엔 엄마가 멈춰야 하는데 말이야. 


엄마는 베풀기를 좋아해. 하지만 이제 베푸는 손에서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단다. 호의가 칼이 될 수 있음을 안 것이야. 호의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상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깊이에서 잠자는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것임을 알았단다. 또한 받는 자의 덕목이란 주는대로 받았다면 주는 자의 마음과 영예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자신을 키워내야 하는데 오히려 엄마의 호의에 상대가 주는 대로 받는 것에 익숙해진 채 머물기도 한다는 것이야.     


훌륭한 선생은 부끄러움 안에서 희열을 느낄 줄 아는 선생이어야 한단다. 뒤에 걷는 자가 항상 엄마보다 못하다면 이만한 죄가 어디 있겠니? 엄마를 계속 부끄럽게 만드는 이가 많을수록 엄마의 행복도 더 커져갈거야. 그래서 착한 사람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려 해. 그렇게 엄마를 뛰어넘어 더 큰 대지로 네가 나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 밟혀 줄거야. 그래서 엄마가 주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열매를 맺어 엄마를 기쁘게 해주길 바라기 때문인거야.     


셋째, 지금 엄마가 서있는 50이라는 나이를 '위대한 정오'로 만들어볼까 해. 

엄마의 하루가 새벽 4시부터 시작된지는 오래야. 4시~오전, 8시간을 집중하면 남들이 보내는 하루를 오전만으로도 거의 다 보낸 셈이지. 그렇게 맞이하는 정오는 엄마에게 덤으로 주어진 또 다른 하루를 시작시키며 엄마를 긴장시킨단다.


'덤'. 덤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무룰 치른 자에게 선물같은 것이지? 제대로 물건값을 치른 사람에게, 풀코스를 주문하는 이에게 서비스가 나오잖아. 엄마는 매일 정오에 제대로 새벽과 오전을 치른 것에 대한 덤으로 새로운 하루를 선물받아. 그렇게 매일 '위대한 정오(주1)' 앞에 당당하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엄마에게 '위대한 정오'란 '자유'로 진입하는 문이야. 마음껏 사고하고 마음껏 쓰고 읽고 마음껏 일상을 누려도 전혀 게으르다거나 소모되는 느낌이 없는 정신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 새벽부터 오전이 의무의 시간이었다면 위대한 정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시간부터는 권리를 누리는 시간이지. 


어느 누군가가 길을 내었을지는 모르나 엄마인생에 처음 가보는 길을 위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껏 엄마자신을 실험하며 탐구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낙서장, 연습장같은 오후 시간을 맘껏 누리려구.      


드넓은 대지 위에 엄마의 정신을 던졌다 떨어뜨리고 다시 주워 담아 또 던지기를 반복하면서 엄마의 곳곳에 뿌리박힌 오류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거든. 구속된 새벽~오전시간을 보내고 자유를 보장받은 '위대한 정오의 문'을 열고 시작되는 또 다른 하루.


엄마의 일상에 위대한 정오를 더 단단하게 지키려 해. 그러기 위해 새벽~오전까지, 구속과 의무에는 타협하지 않아야겠지. 오후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는 자유의 시간이라면 새벽~오전은 높이 날 수 있는 연을 만들기 위해 해야할, 쌓아야할, 알아야할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인 것이야.     


넷째, 더 이상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해.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시간때문에 못했다고, 내 나이가 그렇다고, 이제 그런 나이가 아니라고... 시간핑계대면서 엄마의 한계 안에서 먹던 사탕만 먹으려는 충동이 있거든. 먹던 사탕에 싫증나는데도 자꾸만 핑계에 숨곤 해. 그래서, 엄마는 새로운 사탕을 맛보라고 엄마를 이끄는 힘에 의지해 보려구. 그 힘은 엄마가 아는 엄마자신보다 엄마를 더 잘 알고 더 크게 쓰려고 엄마라는 사람을 통해 뭐든 시도하는 것 같아. 


이러한 시도에 엄마는 시간과 관련된 모든 한계에서 벗어나 보려구. 참 다행인 것은 지금 엄마가 가는 길은 더 빨리 뛰어야 하는 길이 아니라 제대로만 걸으면 되는 길이란 사실이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속도나 사람경쟁없이 그저 묵묵히 걸으면 모두가 승리하는 그런 길. 젊은 너는 빨리 뛰다가 옆길로 새어 놀다가 다시 길을 잃어 뒤로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이미 그 시간들을 거쳐 인생의 중반에 선 엄마는 제대로 이끄는 길을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되거든. 그러니 시간타령하는 건 아주 꼴불견이지. 엄마가 꼴불견인 건 너도 싫지? 그래서는 안되겠지?      

사실 시간이 데려가는 엄마의 길에서 신체는 제동에 걸릴 수밖에 없어. 유연하기보다 굳어지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질거야. 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굳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유연함으로 더 세련되어지는 것을 느끼단다. 지금부터 걷는 길은 어쩌면 신체가 아닌, 정신과 마음의 유연함으로 걷는 길일거야. 


노년은 갖가지 재악(災惡)이 정박하는 항구여서 모든 재악이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온대(주2). 엄마도 이가 들수록 엄마의 항구로 쳐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지겠지? 인색, 비굴, 외면, 질병, 궁색, 관념, 아집, 단절... 정신과 마음의 유연함이 이들의 손을 뿌리치는 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제대로 죽는 것도 어렵겠지. 너희 세대의 말을 빌자면, Well-being해야 Well-dying하는거지. 이제부터 엄마의 한차원 높아진 웰빙은 시작되는거야.  


다섯째, 이제 하나의 목표만을 남기려구.

엄마의 일상은 너무 공개되어 있고 네가 알다시피 매일 아침에 목표를 적는 것은 엄마에게 벌써 10여년이 넘는 습관이 되어 있지. 그 노트만도 벌써.. 몇권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의 목표들은 하나같이 그 당시 엄마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어. 얻은 것도,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더구나. 


말 그대로 백만개의 목표가 엄마를 지나쳤고 

그 목표 앞에서 늘 도전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젊은 인생을 걸어왔지. 


그런데 이제 단 하나의 목표만을 남기려 해.      

지금까지 수많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왔어. 어떤 것은 시들기도, 어떤 것은 바람타고 꽃씨를 뿌리기도..또 어떤 것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기도 어떤 것은 화려하지만 맛이 없기도... 그렇게 시도들이 가득했지. 지금 엄마가 가진 명함들이 이를 증명하겠지. 그런데... 이제 아냐. 단 하나의 깊고 굵은, 단단한 뿌리를 내릴 때인 것 같아.   


그동안 내린 뿌리들, 시들어 땅에 떨어진 낙엽들, 여기저기 팔려나간 열매들이 모두 엄마가 보낸 인생의 대지 위에 양분이 되어 있나봐. 지금까지 모든 씨앗부터 열매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다는 것을 알겠거든. 그렇게 이 열매, 저 열매... 모두를 품어준 대지의 넉넉함덕에 양분이 더 풍성해지고 흙이 더 비옥해지는 것 아닐까? 


이제는 이 토양에 잘 어울리는 단 하나의 뿌리를 더 깊게 내릴 때라는 걸 느껴. 지난 열매들에 대한 아쉬움 떨치고 단 하나의 뿌리가 엄마인생이 펼칠 숲의 정기가 되어 모두를 품어준 토양에게 감사하고 양분되어준 모든 열매의 가치를 상승시키도록 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인생의 솟구치는 어떤 시점이, 지점이 엄마에게 주어진다면 

그간 토양의 양분이 되어준 

모든 것들이 비로소 가치를 갖겠지.

그렇게 모든 시간이 의미를 입겠지.

그렇게 모든 행위가 존재의 이유를 찾겠지. 


어디까지 솟구칠지는 엄마의 몫이 아니야. 

엄마의 생은 그 '생' 자체가 가진 목표대로 오를거야.

'생은 스스로 기둥과 계단을 사용하여 자신을 높이 세우고자 한다. 생은 먼 곳을, 행복한 아름다움을 내다보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 생은 높이 오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략) 생은 오르기를 원하며 오르면서 자신을 극복하기를 원한다(주3).'


생은 생이 가는 길로 높이 솟으려 스스로를 극복해낼 것이고

엄마는 이런 생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저 계속 뿌리를 내리는 것뿐. 

나머지는 엄마를 이끄는 힘이 어딘가 마련해놓은 엄마의 자리에 데려다 놓을거야. 


최대한 깊게 내리고 넓게 펼쳐 높이 올라볼께. 

엄마가 엄마의 자리를 든든히 해서 남아있을 너의 대지에 필요한 존재가 최대한 되어볼께.

그렇게 엄마가 너의 대지에 닿는 날 더 가치있게 네게 쓰일 수 있는 양분이 되어볼께.

그렇게 가는 길목길목에서 덕을 보태어 너의 인생에 소중한 디딤돌로 쓰여볼께.

그렇게 '사람'이란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임을 보여줄께.   


아이야...

엄마의 하루는 네게 다짐담은 이 글이 거짓없는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들로 채워질거야...


항상 말하지만 

의지가 약한 엄마에게 

너는 엄마의 더 큰 의지가 되어준단다.


살과 피를 다 주어도 모자란 아이야...

너의 대지를 위해 새롭게 주어진 너의 모든 시간을 감사히 여기렴...

네가 보내는 젊은 날의 모든 씨앗부터 열매는 어느 것 하나 버려지지 않고

너를 위해 마련된 드넓은 대지의 양분으로 흡수될거야...

감사와 사랑이 그 양분을 고이 담아 부패되지 않게 널 위해 보관해줄거구...


마지막으로...

꼭 네게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어.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피천득 역)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주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2000, 책세상

       *니체는 '위대한 정오'를 '사람이 짐승에서 위버멘쉬에 이르는 길 한가운데 와 있고, 

        저녁을 향한 그의 길을 최고의 희망을 찬미하는 때'라고 표현했다. 

주2> 그리스철학자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전양범역, 2008,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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