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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딸과 걸은 15km 트레킹

아이와 함께 완주한 여덟 시간

by 미나리즘
아이와 함께 15km를 걷겠다고?


알틴아라샨 트레킹은 흔히 “Long but Easy”로 불린다. 길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편도 15km라는 거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작년에 노르웨이에서 왕복 20km의 트롤퉁가 트레킹을 해낸 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힘들겠지만 결국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보통 네댓 시간 걸리는 길을 우리는 여덟 시간만에 해냈다.


알틴아라샨 트레킹. 보통은 네댓 시간이면 닿는 길이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여덟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트레킹 초반 풍경은 의외로 단조로웠다. 숲이 우거진 그림 같은 길을 기대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긴 흙길이었다. 발 아래에서 흙먼지가 풀썩거리고, 길은 지루하리만치 길게 뻗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야가 확 열리며 초원 같은 길이 나타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밭 사이로 소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풍경이 지루함을 조금 덜어주었고, 우리도 그 사이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발걸음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트레킹은 예상 보다 더 힘이 들었다. 아이는 씩씩했지만, 엄마아빠는 금세 숨이 찼다. 그래서 우리의 여정은 걷고 쉬고, 또 쉬고의 반복이었다. 엄마가 힘들면 쉬고, 아빠가 힘들면 쉬고, 아이가 힘들면 또 쉬었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 느림 속에서 서로의 발걸음을 살피며 멈추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힘을 배웠다.



대부분의 길은 완만했지만, 마지막 구간, 게임의 끝판왕처럼 기다리고 있던 오르막은 정말이지 잔인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마주한 가파른 언덕에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젖먹던 힘을 다해 언덕 끝에 다다랐고, 발 아래로 펼쳐진 알틴아라샨의 자태는 생각 보다, 기대 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이었고, 자꾸만 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오래 잠가두었던 보물상자가 열리듯,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또 전혀 다른 세계가 드러났다.



다 왔다!


안도의 순간, 갑자기 천둥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잿빛으로 물들었다. 빗방울이 굵어질 무렵, 마침내 우리가 예약한 숙소, 에코 유르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와, 끝났다!”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온몸은 흙과 땀, 그리고 빗물에 젖어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호텔에 도착한 것보다 벅찼다.



돌아보면, 그 길은 우리 가족에게는 ‘Long but Easy’가 아닌 ‘Long and Hard’였다. 하지만 동시에 ‘Long and Together’기도... 끝없는 계곡길을 걸으며,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법을 다시 배웠고, 끝내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의 웃음, 엄마의 지친 숨, 아빠의 땀방울. 그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알틴아라샨의 풍경만큼이나 반짝거렸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확인했다.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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