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실제 경비 공개
오늘은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배낭을 메고 떠난 올여름, 우리는 중앙아시아에서 한 달을 지냈다. 처음 8일은 부모님과 함께 다섯 명이서 카자흐스탄을 여행했고, 이후에는 세 식구만 남아 키르기스스탄의 산과 호수를 따라 3주를 더 이어갔다.
일 년에 두어 번쯤,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우리를 두고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떠날 수 있는 거겠죠.”
“여행작가니까 가능한 거 아니에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여유로운 통장 잔고’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요, 여행작가여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그 자체가 곧 밥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년 길 위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직업 덕분도, 풍족한 재산 덕분도 아니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소비를 덜어내고, 꼭 붙잡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에 둔 결과였다. 다른 많은 것을 내려놓는 대신 우리에게 소중한 여행만은 지켜낸 것이다.
한 달이나 여행하려면 돈이 엄청 들지 않나요?
몇 번의 장기 여행을 경험한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여행 경비는 기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번 중앙아시아 여행에서도 이 전제가 틀리지 않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 다섯 식구, 8일간 여행 = 약 727만 원
- 세 식구, 29일간 여행 = 약 750만 원
총액만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간과 상관없이 드는 고정비, 즉 항공료와 여행자 보험료가 포함돼 있다. 이를 제외하고 현지에서 실제로 쓴 비용만 따져 보았다.
- 다섯 식구, 8일간 카자흐스탄 경비 = 약 438만 원
- 세 식구, 29일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경비 = 약 580만 원
결과가 흥미롭다. 카자흐스탄에서의 8일은 1인당 하루 11만 원, 29일간의 전체 일정은 1인당 하루 약 6만 원. 긴 여행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카자흐스탄은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렌터카를 이용했기 때문에 교통비가 높게 나왔다. 편안한 만큼, 그만한 비용을 치른 셈이었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이 펼쳐졌다. 29일 동안 우리는 마슈르카(소형 버스)와 장거리 버스, 때로는 히치하이킹까지 시도했다. 알마티에서 국경을 넘어 촐폰아타까지 8시간 넘게 달린 야간버스 요금은 세 식구 합쳐 고작 48,750원. 덕분에,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함께 남았다.
숙박비가 매우 흥미롭다. 8일간의 숙박비 보다 29일간의 숙박비가 더 적다. (물론 인원수가 다르긴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는 부모님과 함께했기에, 항상 조식이 포함된 호텔을 선택했다. 성급도 중요했고, 위치도 도심에 가까운 숙소를 골랐기에 하루 숙박비는 가족당 13만원에 달했다. 짧은 일정 동안 편안함이 목적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었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에어비앤비까지... 다양한 공간에 머물며 세 식구 하룻밤 평균 숙박비는 약 8만으로 줄어들었다. 숫자로 보면 절반이 뚝 줄었지만, 머무는 경험은 배가 되었다. 때로는 낯선 집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창밖에 걸린 빨래가, 여행의 풍경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주로 검증된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했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식사는 달랐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간단히 해 먹거나, 로컬 식당에서 저렴한 한 끼로 우리의 하루를 채웠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기간이 짧았기에 관광비 지출이 크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주요 명소를 간단히 둘러보는 수준이었고, 비싼 투어나 체험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유원지에 방문하고, 로프타기도 경험하며 다양한 현지 액티비티를 경험했다.
한 달이나 여행하려면 돈이 엄청 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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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부모님과 함께한 단기여행과 세 식구만 떠난 배낭여행을 나란히 놓고 보니, 여행의 성격에 따라 비용의 결이 확연히 달랐다. 짧은 여행은 아무래도 편안함을 우선하게 된다. 이동은 렌터카를 빌려 시간을 절약했고, 숙소는 호텔을 잡아 안정감을 택했다. 식사 또한 레스토랑 위주로 이루어지며, 짧은 일정 속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하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지출을 키웠다.
반면, 긴 여행은 조금 다랐다. 시간의 여유가 있기에 불편을 감수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 불편이 여행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고, 게스트하우스나 현지인의 집에서 묵으며 낯선 풍경 속에 스며들었다. 밥상에는 값비싼 레스토랑 음식 대신 시장에서 장을 본 소박한 한 끼가 올랐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훨씬 두터웠다.
짧은 여행이 편안함과 밀도를 돈으로 사는 시간이었다면, 긴 여행은 시간을 들여 지출을 줄이고 이야기를 더해가는 여정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비용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각 여행이 우리에게 남겨준 서로 다른 방식의 풍요로움이었다.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를 합니다.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 거예요. 사진은 최대한 현장 느낌이 잘 나는 것으로 골라봅니다.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앙아시아 여행이나 아이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