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출발한 버스를 멈춰 세운 사람이라니?
3주간의 키르기즈스탄 배낭여행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도시 간 이동이었다. 키르기즈스탄의 가장 보편적인 이동 수단은 ‘마슈르카’. 작은 승합차 형태의 미니버스로, 시내버스와 고속버스의 중간쯤 되는 대중교통이다. 정해진 시간표 따위는 없고, 사람이 차면 출발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현지인들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일지 몰라도, 여행자에게는 매 이동의 순간이 하나의 도전처럼 느껴졌다.
카라콜에서 토소르(Tosor/Тосор)로 이동하기로 한 날,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어떤 정보가 맞는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지르갈란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믿었던 블로그의 정보는 틀렸고, 숙소 아주머니의 말은 옳았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현지인의 말을 따르기로.
"토소르로 가는 마슈르카 정보를 아시나요?"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에르킨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는 몇 군데 전화를 돌리더니 이내 대답했다.
“20분 후에 출발하는 마슈르카를 타야 해요. 하루에 한 대뿐이에요.”
"네? 20분 후라고요?"
오전 9시 10분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은 엉망이었고, 짐은 널브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출발 준비 제로’. 그러나 주저할 틈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눈빛 교환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구겨 넣고, 흩어진 짐을 쓸어 담았다.
엄마, 잠깐만!
에르킨하우스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야 해.
그 바쁜 와중에 아이는 펜과 종이를 집어 들었다.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인사를 놓치지 않았다. 그 조그만 손끝에서 여행의 다정함이 피어났다. 진짜 여행자는 어쩌면 저 아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얼마 후, 현관문을 박차며 에르킨 아저씨가 나섰다. 신발을 고쳐신으며 차키를 쥔 그의 얼굴에는 ‘지금 당장!’이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원래라면 택시를 불러야 했지만,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 아는 그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는 배낭을 꼭 끌어안은 채 에르킨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에르킨의 차가 움직이자 카라콜의 거리가 순식간에 뒤로 미끄러졌다. "라흐맷트(Рахмат)" 고마워요, 고마워. — 우리는 연신 라흐맷트라 외쳤다.
“토소르 가는 마슈르카가 방금 떠났어요.”
마슈르카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듣게 된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정확히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눈빛과 손짓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순간,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곧 짧은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괜찮아요. 따라 잡을 수 있어요.” (사실 이 말도 알아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의 외침과 동시에 차가 다시 거칠게 출발했다. 도로 위에서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됐다. 저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고, 멀리 흰색 마슈르카가 멈춰 서 있었다. 에르킨 아저씨는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았고, 우리는 마침내 신호에 걸린 그 차를 붙잡았다. '마슈르카 잡아 타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안도의 숨을 내쉴 틈도 없이,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차를 놓치면 (택시를 잡아타지 않는 이상) 오늘 안에 토소르로 갈 수 없었다. 게다가 에르킨 아저씨가 그렇게나 애써 잡아줬는데, "안 타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괜찮아요. 서서 갈게요.”
결국 그렇게, 세 식구는 우뚝 선 포지션으로 마슈르카에 올랐다. 아이가 복도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나는 그 앞쪽에서 손잡이를 붙들었다. 남편은 출입문 옆 짐가방 틈에 몸을 기댔다. 당연하게도 앉아있는 사람들 조차 안전벨트는 안 했고, 앞 창문엔 역시나 금이 가 있었다. 카라콜, 안녕. 아쉬움을 삼킬 틈도 없이 버스는 다시 흔들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카라콜에서 토소르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 아이는 차량의 복도 한가운데를 슬쩍 훑어보더니 양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몸을 오므리고, 배낭을 등받이 삼아 슬쩍 바닥에 앉았다. 불평도, 투정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버스 안, 좁은 공간에서 아이는 자신만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침착하게 자리를 잡을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나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엄마, 나 자리 잘 잡았지?”
마슈르카가 덜컹거리며 비포장도로를 가로질렀다. 좁은 통로에 서 있던 우리는 균형을 잡느라 몸을 살짝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였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혼자 여행 중인 한국인이었고, 아침 8시부터 이 차를 기다렸다고 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저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렸어요.
사람이 다 차서 출발했는데, 출발하자마자 기사가 전화를 받더니 멈춰 서더라고.”
그 전화의 주인공이 바로 에르킨 아저씨였다. 정류장에 있던 누군가에게 부탁해, 마슈르카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를 태워달라 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외국인 여행자를 태우기 위해 이미 출발한 버스를 멈춰 세운 사람이라니! 그건, 돈으로도 계획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인간적인 다정함이 만든
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
카라콜에서 토소르까지, 흔들리는 마슈르카를 타고 두 시간 내내 입석이라니?! 카라콜의 에르킨 하우스—아이가 남긴 손편지—신호 앞에 멈춰 서 있던 마슈르카—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이어준 한 사람의 선의. 그 모든 장면이 한 줄의 이야기처럼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그저 '이동의 하루'였을 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키르기스스탄 여행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하루였다. 누군가의 다정한 마음 덕분에 우리의 여정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행을 이어주는 건 단순히 목적지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건네받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끝까지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날의 다정한 손길들이여!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를 합니다.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 거예요. 사진은 최대한 현장 느낌이 잘 나는 것으로 골라봅니다.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앙아시아 여행이나 아이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